"우리 친구 할래요?"








싫은지도.
그래, 친구 하기 싫은 것 같다.




하지만 왜?
그런 건 모른다.

그냥 괜히 싫다.




이유 없이 싫은 거라면 거절하는 게 무례한 거겠지.






"그래. 친구라면 말 정도는 편하게 해야 되는 거 맞지?"
".. 어.. 그렇지.."








그럼 우린 섹스파트너면서, 친구면서..
그렇다는 건가..






"근데 저기..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나 심술부리는 거 아니고, 진심이야.
뭔가 밍숭밍숭 하잖아, 우리.









"내 키스파트너 해줄래?"
"뭐?"
"나는 너랑 키스하는 거 좋은데.. 섹스 안 해도 키스하고 싶어. 싫어?"









싫다고 할 건가..










"싫어?"
".. 글쎄.."
"싫구나."
"아니, 싫다기 보다도.."
"그럼 좋은 거야?"
"그러니까.."
"싫은 건 아니구나?"











왜 내가 심술부리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응."




























친구가 되자고 한 뒤로 그는 훨씬 편한 눈으로 봐주었다. 그 전에는 피하느라 정신 없거나 멍하니 있어서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것도 아니면 나는 뚫어지게 쳐다보더라도 그는 내 눈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내 눈 언저리를 보면서 교묘하게 내 시선을 피했었다.


친구가 되자고 했던 건 허언이 아니었는지 그는 나를 훌륭하게 친구로 대해주었다. 그렇다고 살가워졌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우리 의원실 식구들이 그렇듯이 아주 평범하게 적당히 걱정도 해주고, 농담도 건네고, 의원실에 올 때는 편하게 다같이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래요. 안녕히 가세요."
"황 기자님, 운전 조심하시고!"
"예에-."
"저 잠깐 은행 좀 다녀올게요."
"그래요."







뭔가 마음에 안 든다.


그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싫지 않다. 오히려 좋다고 할까.
그다지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잘 없는 내 주변에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더욱 독특하게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고, 친구라는 위치를 가진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의원실을 나와서 그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누가 있는지 얼른 살피고 제일 안쪽 칸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뭐해?"





심드렁하게 묻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쉿, 목소리 낮춰."







무슨 일인가 싶은지 그가 아주 작은 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나 너랑 키스하고 싶어."






그의 표정 굳어도 할 수 없다. 하고 싶어.







".. 여기서?"
"지금 하고 싶은데 별로 할 수 있는 곳이 없잖아."
".. 왜..? 하고 싶은데..?"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어.
해야 될 것 같으니까 그러는 거지. 안 하면 지금 너무 너무 짜증이 날 것만 같다고.
그리고 사실 이미 많이 짜증이 나 있기도 하고.






"지금 너무 짜증이 나서 좀 안정이 필요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그의 뺨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멈칫 하는 그가 느껴졌지만 내가 하는 짓을 막지는 않았다. 그의 입 안에서 무뚝뚝하게 있는 혀를 건드렸다. 입 안을 이곳 저곳 맛본다. 움직이면서 혀가 닿을 때마다 그의 뺨을 감싸쥔 손에 얕은 떨림이 전해진다.


손을 풀어 그의 어깨 위로 두 팔을 걸치고 그의 뒤통수를 더 잡아당겼다. 그도 포기를 한 건지 어떤 건지 어느 샌가 허리를 감은 두 팔에 힘을 더했다. 자세도, 마음도 더 편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았던 눈을 살짝 떠본다.







바보 같이 키스하다 말고 입가에 비죽하고 웃음이 다 새어 나오려 한다. 그의 조금도 찡그리지 않고 평온해 보이는 표정에 안심이 된다.









화장실 벽에 내 등이 한 번 부딪친 뒤로 그 자세대로 계속 나는 그의 입술을, 키스를 탐했다. 몸 한가운데서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간다. 달콤하지만 씁쓸한 초콜릿도 아니고, 너무 달기만 한 솜사탕도 아니고, 어릴 적 아플 때 마시던 따뜻한 보리차에 탄 설탕물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계속 몸 안에 퍼져서 키스만 하고 하루 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몇 날 며칠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아서 아주 살짝 그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마저도 짜릿할 만큼 멈추기 싫은 키스였지만 여기는 엄연히 직장이다. 입술을 떼고도 멍한 듯 자세를 바꾸지 않는 그를 아까 의원실에서 보여준 것 같은 다소 복잡한 심정의 미소를 띠고 살짝 밀어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이렇게 그를 대하는 건 친구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순전히 껍데기뿐이다. 조금 씁쓸해지려고 한다.



"아무도 없나? 어떻게 나가지?"
"너 먼저 나가. 내가 나중에 나갈게."
"알았어. 조심히 가고, 나중에 연락해. 안녕."
"안녕."









문을 열고 나오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몸을 돌려 그의 바지 벨트를 잡아 끌었다. 손으로 그의 바지 지퍼 위를 살짝 움켜쥐면서 순간 경직된 그의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나중에 더 찐한 것도 부탁해요."
















그와 소위 친구가 되면서 나눈 대화들로 나는 그가 나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고지식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를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했던 게 조금은 수긍도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건 오해라고 일부러 말해서 풀려고 하는 것도 웃기는 것 같아 내버려 두었었다.



아마도 내가 먼저 키스하고 싶다고 하고, 섹스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는 나에 대해서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은 어느 정도 실망했겠지.





하지만 분명 우리는 '친구'하자고 했을 뿐, 섹스파트너를 그만두자는 말은 한 적이 없다. 친구라는 말로 자동 삭제되는 조항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내가 알 수 없는 내 안의 모순.



시작은 아마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 직후부터일 것이다. 어머니라는 사람은 남편의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서 다섯 살 난 동생과 일곱 살이었던 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 여기까지 알게 된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어머니를 미워할 거라 생각하는데 난 별로 그렇진 않다. 다만 어머니가 이젠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럼 동생은 내가 돌봐야 한다는 것만은 강하게 느꼈다. 미움 같은 걸 느낄 새가 없었다. 왜냐하면 유달리 말이 늦고, 말수가 극히 적었던 내 동생은 어머니가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자폐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그래,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그나마 생계 유지는 해주었다. 그저 술을 쳐마시고 들어와 쓰러져 자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고, 취해 들어와서 어머니를 닮았다는 나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는 동생은 꽁꽁 숨겨두고 혼자 두드려 맞으면서 열심히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반 아이들 번호와 이름을 외우며 참았다.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중학생이 되자 알콜 중독으로 더 이상을 일을 하지 못 하게 되고 집에 틀어박혀 밤낮 술만 쳐마시다가 자고, 일어나서 술만 쳐마시다가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그 인간이 동생에게 행여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감시했다. 다행히도 그는 그나마 자신을 닮은 동생을 때리지는 못 했는지 머리를 몇 대 때리는 것 빼고는 나와 얼굴을 붉힐 일이 없었다.








내가 버는 몇 푼 안 되는 돈 중에 그 인간의 술값으로 나가는 돈이 많았던 것이 너무나도 짜증이 나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 인간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이미 그 때 나는 내 어머니를 너무 닮았었다. 취해서 완전히 돌아버린 그는 나에게 내 어머니에게 퍼부었어야 할 갖은 욕을 해가며 무참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배 위에 올라 앉아 따귀를 올려 붙이던 그의 손이 갑자기 멈췄을 때, 그가 그 끔찍한 손으로 부어 터진 내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뻔뻔스럽게도 눈물까지 흘리며 '여보 미안해'를 반복하던 그 인간이 내 교복 단추를 푸르더니 그 소름 끼치는 입술을 내 목이며 가슴에 갖다대는 것이었다. 그 인간이 내 어머니를 유린하는 동안 나는 그에게 깔린 채 무기력하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었다. 우습게도 그 시간 동안에 나는 옆방에서 자고 있는 동생이 깨지나 않을지, 내일은 일어나서 동생에게 반찬을 뭘 먹이고 나갈지, 아르바이트는 몇 시에 어디로 가야할지를 생각하면서 그저 그 악몽 같은 시간이 내게, 지금 내 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처럼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내게 아이처럼 매달려 사정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구역질나는 표정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부터 맞을 때 동생이 깰까봐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던 나는 그 인간이 짐승 같은 그 행위를 내 몸 안에다 할 때도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 뒤로 그 인간은 내가 집에 왔을 때 깨어 있던 모든 날 그런 식으로 폭력에서 시작되는 그 짓을 거듭했다. 그 때마다 나는 계속 동생, 내일 할 일, 돈, 학교를 생각하며 그저 그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다. 나는 처음 이후로 언제나 눈을 꽉 감고 그 인간을 절대로 쳐다 보지 않았다.






청소년 가장이라는 명목으로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서 최대한 보수가 좋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은 것이 바로 지금의 이 자리였다.















섹스가 혐오스럽지 않은 행위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도 쉽지는 않았다. 즐겁고 기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어느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에, 내 생각에 솔직했기 때문에 그나마 그 인간이 술에 쩔다 못해 썩어서 드러눕고 난 뒤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 눈을 꽉 감는 것만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았었다.



실로 몇 년만에 처음 본 다른 남자의 절정이 그, 황윤석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 인간을 그냥 그렇게 무기력하게 내버려 뒀던 모순에 가득찬 나,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면서도, 그가 실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가 싫어할 만한 말을 하는 나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일까. 대체 나란 사람을 꽉꽉 채우고 있는 이 모순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냥, 그가 내 친구인 것이 좋고 싫다.
그냥 좋은데, 또 그냥 싫다.







Posted by high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