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FlytotheSky
[연재] If I'm not in love with you (14)
highenough
2006. 2. 23. 23:48
"민규야."
"네?"
"왜 그랬어?"
"뭐가요?"
"왜 너답지 않게 거짓말 했어?"
".. 나.. 나다운 게 뭔데요? 왜 아저씨까지 날 자꾸 내몰아요.."
"그럼 너 지금 나 사랑하니? 나랑 다시 사귈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내가 그를 거부한 것은 내 상처를 들추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라서 아저씨한테 그런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그에게서 그 어떤 변명을 듣게 된다면 용서할 것 같아서, 내가 받은 모욕 같은 건 다 잊고 그냥 받아줘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굳이 그렇게 돌아서버렸다.
"용서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러고 나서는 또 난 내 주제를 잊을지도 몰라요.."
"네 주제가 어떤데?"
".. 뭐.. 한심했죠."
"민규야.."
"네?"
아저씨가 갓길에 차를 대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스스로를 속이지 마. 아저씨는 몰라서 널 놓친 거였지만 넌 알고 있잖아. 손을 그 쪽에서 내밀었다면 그 쪽에서도 그만큼 어려운 결심이 필요했겠지.. 그러니까 민규야.."
"아니에요, 아저씨."
그래, 다 잊고, 정말 모두 다 잊는다고 해도 그의 뒤에 똑똑히 보이는 그의 옛사랑만은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옛사랑은 옛사랑일 뿐 아니라 그의 현재에도 살아 있는데, 이렇게 눈에 똑똑히 보이는데..
"내가 아니어도 되니까요, 그 사람은."
"무슨 뜻이야?"
"내가 꼭 아니더라도 괜찮을 거예요.."
"민규야.."
"네?"
"왜 이렇게 속상하게 하니.."
"왜요.."
"그 사람은 괜찮을지 몰라도.. 지금 네 얼굴을 봐.. 네가 괜찮은 것 같니..?"
그래도요, 아저씨..
내가 너무 초라하잖아요.
그 사람은 나 아니어도 된다는데..
"내 컴퓨터 누가 만진 적 있어요?"
"아니오-. 왜요? 뭐 이상해요?"
"ㄴ..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잠깐 착각했나봐요.."
파티션으로 가려져 있고 모니터 방향이 구석을 향하고 있어서 남들이 본 것 같지는 않은데 외근 나갔다 퇴근하기 전에 잠시 들어 왔더니 화면보호기가 바뀌어 있었다.
- 주민규 비서관님, 남자가 좋습니까?
깜짝 놀랐지만 대체 누가 알고 한 짓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알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혹시 아저씨랑 관련된 사람인가?
아니면 의원실 식구들..?
아니면.. 아니기를 바라지만 설마.. 그..?
남자가 좋냐는 말,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익숙한 거부감에 소름이 끼쳐 온다.
비슷한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주 비서, 요즘 집으로 안 가?"
"네."
"아까 관리실인가에서 전화 왔더라고.. 우편물 찾아가라고.."
"아아.. 예. 고맙습니다. 먼저 퇴근할게요. 내일 뵈요~"
"조심히 들어가요.."
"내일 아침에 회의 잊지 마십시오!"
"네-."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는데 제일 안쪽 칸의 문이 열리고 그와 꼭 닮은 가방과 옷, 앞머리가 비죽 튀어 나온다. 깜짝 놀라서 쳐다 보지만 그일 리가 없다. 아주 같은 듯 다른 그 사람이 나오면서 문이 쾅- 하는 소리가 나자 바로 얼마 전인 것 같은 그 때의 일이 생각난다.
- 뭐해?
- 쉿.. 나 너랑 키스하고 싶어.
- .. 여기서? .. 왜..? 하고 싶은데..?
- 지금 너무 짜증이 나서 좀 안정이 필요해.
- 너 먼저 나가. 내가 나중에 나갈게.
- 나중에 더 찐한 것도 부탁해요.
그의 따뜻했던 입술의 온기가 지금 다시 느껴지는 것 같다. 살짝 눈을 떴을 때 한 없이 평온했던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그 때는 괜히 웃고 싶었던 내가 같은 장소에 서 있는데 지금은 괜히 울고만 싶다.
요즘의 나는 확실히 너무 나약해졌다.
"아저씨."
"아이고, 민규 씨. 우편물이 다 집앞에 그대로 쌓였나봐.. 옆집에서 무슨 일 있느냐고 묻더라고.."
"아, 네.. 지금 올라가서 가지고 갈게요. 당분간은 비울게요. 그 동안만 신경 좀 써주세요."
"아유 뭐 그 정도야 하지.. 오늘 신문 배달한테도 얘기해놨어."
"고맙습니다. 저 갔다 올게요.."
"아 근데 민규 씨.."
"네?"
"저 그.. 나는 민규 씨 비운 줄 몰랐어.. 그 친구가 계속 찾아오길래.."
"친구요?"
"아 왜 있잖아.. 그 잘생긴 청년.."
".. 아.. 예.. 어쨌든 다녀올게요.."
그가 왜 왔을까..
내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긴 했지만 용서를 비는 말이라면 듣고 싶지 않다.
그를 용서하고 싶어질 테니까.
집에 온 김에 먼지라도 좀 털고, 환기라도 할까 싶어서 집에 들어갔다. 역시나 사람 손이 조금 안 타니까 먼지도 쌓이고 사람이 사는 집 같지가 않다. 대충 걸레를 빨아서 바닥이며, 눈에 보이는 곳을 닦고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침대 시트를 한 번 다시 정리했다.
시리게 파란 색인데도 포근한 시트..
그의 눈에 천박하게만 보였을 내 행동으로 자주 그를 끌어들여서 잠자리를 가진 탓에 한참이나 아무도 눕지 않았던 시트에서 괜히 그의 체향이 나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먼지냄새에 섞여 나는 향이 아주 미미한데도 분명하게 느껴진다.
감상적이 되는 것 같아 얼른 정리를 마치고 창문을 닫는다. 괜히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침대 앞쪽에 주저 앉아 적막을 깨려고 티브이를 켠다. 물이라도 마실까 하고 몸을 일으켰다가 문득 다시 허락도 없이 그의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이젠 안 되겠다 싶어서 나가기 위해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가스 점검이나 해보려고 렌지에 불을 켜보았다.
- 어? 여기 있던 라면 하나 있던 거 네가 먹었어?
- 어.. 왜?
- 야! 너 뭐야.. 사람 자는 사이에 치사하게 이럴 수 있어? 내가 일부러 일요일 점심으로 먹으려고 남겨둔 거란 말이야!!
- 그러니까 누가 뻗어서 그렇게 오래 자래?
- 야! 너 때문이잖아!! 빨리 가서 라면 사와! 빨리!
다리에 힘이 쭉 풀려버려서 주저 앉아버렸다.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 되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급하게 난다. 옆집 사람인가 싶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문을 연다.
"민규야!"
다급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급히 닫으려는데 그가 완력으로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와버린다.
"민규야, 내 말 좀 들어봐!"
"어서 나가시죠. 안 나가시면 신고하겠습니다."
"제발 말 좀 들어봐.. 그런 게 아니야.. 정말 미안.. 미안해, 민규야.."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만 듣고 싶지 않습니다. 1분 안에 안 나가시면 신고하겠습니다."
"아직 못 한 말이 있어.. 응? 제발 민규야.."
"듣고 싶은 말도 없고, 듣지도 않을 겁니다. 빨리 나가주세요. 정말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질척하게 구실 겁니까?"
"민규야.. 제발.."
가만히 서 있는 내 양팔을 꽉 잡고 나를 흔들며 뭔가 계속 할 말이 있다는 그의 눈을 피하며 끝까지 외면했다. 사실은.. 그냥 뿌리 치고 나가면 그만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이렇듯 가만히 있는 것은 대체 내 속의 어떤 바람이 남아서일까.
"재미 볼 만큼 봤잖아! 이제 좀 떨어져! 남들한테 팔았던 몸이라고 너도 본전 생각 나던? 이것 좀 놔!"
"민규야.. 그게 아니야.. 정말.. 나는 내가 못 나서.."
"듣기 싫다고 했잖아! 네 손이 닿기만 해도 끔찍해, 어서 놓으라니까!"
그의 팔을 뿌리치고 그를 비켜서 나가려고 하는데 강하게 끌어 당기는 힘에 몸이 휘청하고 만다. 간신히 넘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그의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느낌에 눈물이 난다.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어내려는데 그가 쉽사리 놔주지 않는다.
"네가 만지는 거 싫다고!"
"사랑해.. 민규야.. 사랑해.."
하하..
우습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걸까..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그가 미쳤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저씨 오시기 전에 빨리 사라져."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그가 쉽게 팔을 풀어준다.
"못 들었니? 아저씨 오시기 전에 빨리 나가라고. 아저씨가 오해하시는 거 싫거든?"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돌아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 본다.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 앉는다. 한참이나 지나서 전화를 꺼내 들었다.
"아저씨.. 전데요.. 죄송한데요.. 오피스텔에 우편물 찾으러 왔다가요.."
-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왜 그러니?
"아니오.. 별일은 없는데요.. 나 거기까지 지하철 타고 가기 너무 귀찮아서 그러는데요.."
- 지금 갈게. 기다려.
이상한 꿈이었다.
아저씨 말로는 내가 하도 식은 땀을 흘려서 아저씨는 자지도 못 했다고 하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꿈 속에서 모든 것이 반대였다.
아저씨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으로 나오고, 인규는 나보다도 더 활발한 아이였고, 어머니란 사람은 아직도 내 곁에 있었고, 그 인간도 내게 나쁜 짓은 커녕 매우 잘 해줬다. 의원실 식구들은 전부 내 적들로 나오고, 살면서 만났던 깨어 있을 때는 기억조차 힘든 사람들도 모두 나와서 전부 정반대로 행동했다.
그런데 오로지 그만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꿈 속에서 봤는데도 좋은 사람이었는지, 나쁜 사람이었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꿈 때문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내놓고 지금 퇴근하는 길에 아저씨 차에 타서도 골똘히 그것만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어디 몸 안 좋니?"
"아니오.. 저요.. 꿈 꿨다고 했잖아요.."
"그래.. 용꿈이라도 꾸고 고민하는 거야? 아니면 돼지꿈? 로또 사러 갈까?"
"아니오.. 그런 꿈 아니었어요.."
"그럼 어떤 꿈이었는데? 어떤 꿈이었길래 그렇게 식은 땀을 흘렸어?"
"꿈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으로 나오는 거예요..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 좋게 나오고.."
"우와.. 그럼 난 어땠어?"
"아저씨가 기억나는 중에는 최고 악당이었어요. 헤헤.."
"이야.. 그거 영광이네.. 꿈은 반대라잖아.."
"근데요.."
"응?"
"누구 한 사람은 어떻게 나왔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안 나요.. 다들 조금만 생각해내면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안 나요.."
아저씨가 한참이나 대꾸가 없다.
".. 아저.. 씨..?"
".. 어.. 어..?"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아니.. 저녁 뭐 먹고 싶니? 와인 좋은 거 들어 왔다던데.."
"그냥.. 샌드위치 먹을래요.. 오랜만에."
"그럴까 그냥?"
"네.."
프런트에 내 방으로 샌드위치를 보내달라고 간단히 말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씻고 나오니까 아저씨가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샌드위치는 아직이에요?"
"아니.. 저기.."
"왜 안 드세요?"
"기다렸어.."
"에이.. 티브이 보고 계시면서 그 핑계가 먹힐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뭐 안 믿어줘도 할 수 없고."
아저씨가 웃으면서 돌아 앉았다. 마주 앉아서 먹기 시작하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네."
- 이사님, 황윤석 씨가 방문하시겠다는데요.
"누구예요?"
"그 사람이라는데, 민규야?"
"오지 말라고 해요. 보기 싫어요.."
"보내셔도 됩니다."
"아저씨!"
"내가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했지?"
"그래도 아저.."
"내 말 듣는 거야."
채 반박을 하기도 전에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들어오게."
잠시의 틈을 주고 그가 들어 왔다. 들어오자마자 마주친 눈에 그가 굳는 것이 눈에 확연히 보였다.
얼마만에 보는 그인지 뺨도 야위고 안색도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조금 살찐 듯 해야 편안해 보이는 그였는데..
"가자, 집에."
"무슨 헛소리야?"
"너희 집 있잖아! 왜 여기에 있어!"
"나 싸구려라서 여기 있을 건데. 네가 무슨 참견이야?"
"그러지 말고 가자. 어서 옷 입어.."
"그러니까 네가 뭔데!"
"민규야.. 미안..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나 좀 살려줘.. 나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어.. 응?"
"네가 뭘 잘못 했는데? 싸구려한테 싸구려라고 말한 거잖아. 내가 속 좁아서 그러는 거야. 나 하나쯤 네 인생에 없어도 아무 상관 없잖아! 왜, 내가 더 갖다 대줘야 네 속이 풀리겠어? 그래?"
"민규야.."
"그래.. 친구라고.. 친구라고 하면 돈 같은 거 없어도 내가 좋다고 자빠질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되니까 기분 좋았니?"
"제발, 민규야.."
"예쁘장한 애 깔고 옛날 애인이나 떠올리면서 박아대니까 좋아 죽겠던?"
"그런 거 아니야.. 민규야.. 나도 정말.."
"듣기 싫어. 당장 나가."
"사랑해.. 민규야.. 제발 좀 믿어줘.."
또 그 놈의 사랑타령.
이상하게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이젠 아주 해탈의 경지인 건가..
"사랑? 친구로 대주다가 안 대준다니까 사랑한다고? 왜? 아주 셋이서 하자고도 해보지?"
"제발 좀 믿어줘.. 어떻게 해야 믿겠니? 응? 민규야.."
"웃기지 마. 옛 사랑 찾았으면 가서 잘 해줘. 왜 여기 와서 엉뚱하게 이래? 왜? 그 사람은 나처럼 싸게 안 놀아? 그렇게 고고하신 분이랑은 기분이 안 나?"
"그만 좀 해, 민규야.. 왜 그렇게 믿어보려고 하지를 않아.. 내가 잘못했어.. 그래도 한 번만 생각해줘.. 응? 한 번만 진심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봐줘.. 민규야.."
"어떻게 믿을까.. 내가 뭐? 사랑을 믿으라고? 네가 나를 사랑해? 이미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우리는 사랑은 커녕 친구도 못 돼. 눈 뜨고 잘 좀 봐."
만신창이라고.. 이미 내 마음은 만신창이라고 애원하는 것 같은 그의 눈빛이 보인다.
하지만 용서하면 안 된다.
나는 그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미 그의 곁에는 그의 곁을 지킬 사람이 있다.
"지금 네 옆에 있는 게 누군지, 지금 내 옆에 있는 게 누군지."
"민규야..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저.."
오기로, 악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감정 낭비따위 어울리지 않는다.
용서 같은 나약함으로는 나는 내 인생을 감당할 수 없다.
가망이 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 게 나를,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아니. 네 옆에 누가 있든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내 옆에는 너 올 수 없어."
"나 너 사랑해, 민규야.. 응..?"
"그런 거 믿을 수 없어."
"내가 바보였어.. 내가 자꾸 도망치려고만 해서.. 도망쳐야 되는 줄 알고.."
"그런 소린 필요 없어."
"내 생각만 해서.. 내가 너한테서 도망만 쳐버리고 나면 다 잘 될 줄 알았어.."
"빨리 나가줘."
힘이 다 빠진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한탄을 하듯 터져 나왔다.
"그냥 민규야.. 내가 너 사랑하는 거.. 그것만 들어줘. 다른 말은 다 거짓이야. 다른 본 것들도 다 진실이 아니야.. 그냥 내가 너 사랑하는 것만 진실이야."
지난 번이 마지막인 줄 알았던 그의 뒷모습이 또 다시 보인다.
아마도..
어깨가 떨리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이유가 없다. 이미 그를 지켜주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용서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가 했던 모든 말을 전부 믿어줄 수가 없다.
문이 닫히고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가까스로 침대에 걸터 앉아 조금 전에 그에게 정신 없이 쏟아낸 심한 말들을 곱씹어보고, 죽어서 꼭 그만큼 더 벌을 받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그가 받은 상처만큼 내가 남은 생애에 아프게 해달라고 빌어본다.
"민규야.. 너 안 재워줘. 집에 돌아가."
"아저씨.."
"네 핑계에 나 이용하지 마. 나도 너 좋아하는데 가만히 좋아하기에는 나도 마음이 아프구나.."
"아저씨.. 왜 그래요.. 나 아저씨 아니면 아무도 없는데.. 이제는요.."
"그래.. 그러니까 돌아가. 너 혼자 답을 찾아. 내가 있으면 넌 영원히 숨으려고 할 테니까."
아저씨..
저한테는.. 정말 아무도 없어요.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내가 필요 없거든요.
저 이렇게 내치지 마세요..
저 이대로 나가면 저 사람 용서하고 말아요.
또 바보 같이 주제 파악 못 하고 저 사람 욕심 낼 거예요..
나 그냥 저 사람 만나기 전처럼 인규 돌보고, 제 앞가림이나 하면서 살래요..
그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