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FlytotheSky

[연재] If I'm not in love with you (11)

highenough 2006. 2. 20. 00:05


“불편해??”

어깨에 살짝 기대며 그가 내게 물었다.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도 이젠 익숙해진 그의 향기에 마음 어딘가가 느긋해지는 기분이었다.

초조했다.
그것은 얼떨결에 초대 받은 행사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색해서일 수도 있고…..
왠지 불안한 것처럼 시선이 놓이지 않는 그 남자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지루하지??”

“……..응…”

자신이 주최하는 행사도 아니고, 나 역시 일의 일환으로 온 것인데 연신 내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민규를 보자 약간의 장난이 발동해서 무뚝뚝하니 내뱉고 나니. 금세 울상을 하고는 내 소매를 잡아 쥐는게 정말, 사람을 사악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민규는.

“그럼…. 잠깐 나갈래??”

“응??”

한창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있는 예의 ‘아저씨’에게 살짝 눈짓을 하고서는 민규는 사람들을 피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물론.. 아는 사람도 없고 – 아는 얼굴이래 봐야 대부분 민규네 당의 의원님들과 그 일당들 정도랄까?? 서로 알긴 하지만 껄끄러운 그런 사람들 말이다…- 재미도 없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지만, 어쩐지 행사장을 빠져 나가기 위해 그 ‘아저씨’의 허락을 맡는 듯한 민규의 행동의 무지무지 거슬려서… 난 그의 손에 마지못해 끌려가는 아이 같이 심통난 모습이었다.

“여기….여기..”

드 넓은 호텔 안을 제 집처럼 요리조리 끌고 가더니 사람도 없는 스산한 복도, 음침한 문 앞에 서서는 베시시 웃어대는 것이다.

“여기가 어딘데??”

“아무도 없는 곳….”

“뭐??……  헛!!”

민규의 웃음이 어째 불길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컴컴한 방에 갇혀 있었다.

무작정 입술을 부딪혀오는 민규의 힘에 밀린 등에 푹신한 이불 같은 것이 닿이는 걸 보니 세탁물 관리실이나 뭐 그런 곳 같은데, 민규는 어떻게 이런 곳을 아는지, 어리둥절해 할 틈도 없이 입술을 가르고 파고드는 민규 덕에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어딘지 가슴 떨리게 할 만큼 질척한 입맞춤이 끝나고, 내 목덜미를 안아오며 민규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하아…….. 좋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밀폐된 둘만의 공간에서 그의 목소리는 본래의 부드러움에 달콤함이 더해져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민규는 늘 솔직하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사람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하다.

언젠가 훗날 내게 ‘싫다’ 고 말한다면….
난 조금의 여지도 없이 그를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싫다.. 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 싫은 것일 테니까…….

이런 생각은 하기 싫다……

민규의 가는 허리를 더욱 힘주어 안았다.

향긋한 냄새에 따스한 체온, 나긋한 몸짓까지……….
사내 자식이 이렇게 달콤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왠지 마땅찮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마음 어딘가에서 이대로 굳어버렸으면 좋겠다.. 같은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 슬며시 번져나오고 있었다.

“사람들 오겠다……”

실은 행사 끝날 때까지 내내 이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짐짓 녀석을 밀어 낼 듯 말했다.

“안 와… 교환시간 되려면 아직 멀었거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민규가 이상스러워서 나는 되묻고 말았다.

“어떻게 알아??”

“응?? 예전에… 아…. 저… 여기 아저씨네 호텔이라서 알아….”

뭔가 말을 얼버무리려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나빴지만,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은 바로 그 ‘아저씨'였다. 도대체 민규의 그 ‘아저씨’는 대체 뭐지?? 민규의 옛 남자인 건 안다. 그 자신이 내게 선심쓰듯 민규 아껴줘야 하네…. 그렇게 말했고, 민규 역시 달리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도대체 둘만의 이 알 수 없는 친밀함은 무엇인가 말이다………

어떤 헤어짐이든 사랑은 상처를 남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옛날에 사랑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나면 쑥스럽고, 그 때의 어리석었던 자신이 떠올라 어색해지리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래서 꼭 나처럼 그렇게 지독한 이별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민규와 그는 헤어진 연인 답지가 않았다. 서로가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무엇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두 사람이 서로 특별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응??”

“너희 두 사람….”

말은 한 건 난데 왜 내가 살짝 기분이 나쁜지…

“아… 나… 아저씨네 회사에서 장학금 받았어….”

“장학금??”

“응……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아저씨 덕분일 거야……….”

민규의 눈빛이 순식간에 아련해진다.
그게 보기 싫어서 그냥 품에 더 안았다.

장학금이라……..

공부를 잘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뛰어난 아이였나보다. 그러니 재단 이사까지 친하게 되고 말이다. 그런데 민규네 집이 장학금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던가??

보기엔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 ”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묻는다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가만히 안고 있는데… 조용한 문 밖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인적이 뜸한 곳이고, 지금은 행사 때문이 사람들이 한창 바쁠 때였다. 그런데 이런 세탁물 보관실에… 더구나 노크라니??

민규 역시 놀라 듯이 고개를 들었고, 나는 일단 민규를 구석에 밀어 놓고 앞으로 나섰다.

“역시 여기 있었군…..”

문을 열자 알 만하다는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그가 보였다.

“아저씨??”

“민규야 너네 의원이 찾던 걸?? ”

“에??”

“어서 가봐…”

“네…..”

나를 힐끗 돌아보는 민규에게 가보라는 눈짓을 해 보이고는 민규가 사라지자, 그를 마주 보았다.

그는 어떻게 민규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어떤가?? 조용한데 가서 한 잔 할 텐가??”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그의 뒤를 얌전히 따라 나섰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떻게 민규랑 만나게 됐는지 이야기 해줄 수 있나??”

호텔 상층의 스카이 라운지까지 올라와 그가 내게 처음 물은 말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민규의 보호자인 듯이 행동하는 이 남자 앞에서 우리의… 그 첫만남을 말하기 싫었다. 지금의 관계가 어떠하든 간에 그는 민규의 옛 남자였고,우리의 관계가 민규의 가벼운 행동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그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첫눈에 반했습니다……..”


결국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거였다.

난 민규에게 한 번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후후…… 그래……. 아름다운 아이지…. 차갑고 냉철해 보이지만 결국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섬세한 아이야…”

그 역시 민규처럼 아련한 시선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어쩐지 손끝이 떨려왔다.

“내가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민규는 막 잔금이 가기 시작한 유리 인형 같았다…..”

“눈이 갔지…… 손만 대면 부서질 것 같아서 일부러 더 건드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쉬웠다…. 막 알을 깨어난 어린 새처럼 나만 보고 나만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그는 지금 내게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지만, 듣고 있는 나는 체한 사람 마냥 뱃속 어딘가가 무겁게 눌리고 있었다.

“왜 헤어지셨습니까??”

무례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초조한 기분에 그에게 묻고 나니 어쩐지 유치해진 것만 같아서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것을 넘어서, 그는 큰 사업을 이끌어가는 도량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까??
어린애처럼 유치한 그런 나를 아랑곳 않고, 그는 되려 내게 물어 왔다.

“자넨….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이 막힌 나는 가만히 술잔을 비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말을 멈춘 그였지만 내 대답을 들으려 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역시 술을 한 잔 비우고 나서는 아주 어렵다는 듯 말을 꺼냈다.

“난 말이야….. 사랑은 서로를 구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난 민규를 알고……..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 그전까지 아무 맛도 없고, 아무 색도 없던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화려한 색을 가졌는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어…… 그 암흑의 세계에서……. 민규를 통해 구원 받은 거지……그런데………”

그는 다시금 쓰게 술을 삼켰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난 해줄 게 없었네….. 나로서는 민규를 구할 수가 없었어…….. 그 때의 나는 말일세…….”

그는 마치 내가 답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물어 왔다.

“어떨까?? 지금이라면……. 난 민규를 구할 수 있을까??”

 

 

 

 

 

 


어떤 정신을 가지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때마침 울려주는 핸드폰을 핑계삼아 술을 더 마시겠다는 그를 두고서 아예 호텔을 나섰다. 보통 같으면 귀찮아 했을 정수의 전화였는데 그 순간만은 너무도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무작정 눈에 보이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앉았다.

이상하게도 최고급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보다 이 곳이 훨씬 더 맘이 편했다.
결국 나는 서민이었던 거다.


..드르르…….

주머니 안에 울려 대는 핸드폰이 누구 때문인지는 알았지만, 차마 받을 수는 없었다.

민규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그냥 그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내 성질을 못 이겨 버럭 화라도 내버릴 것 같아서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무시하기로 했다.

눈가가 조금식 매워져 왔다.
술이 오르는 모양이다.

술과 함께 생각 역시 제멋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민규에게 돌아간다면….. 그렇다면 민규는 어떻게 할까??

그는  능력 있고, 세련되고 너그러운 어른이었다.
겨우 옛 상처 하나 감당 못해 허덕이며 민규를 상처내는 나와는 전혀 다른, 큰 남자였다.

그런 그가 사랑한다고 민규에게 돌아오라고 한다면…..

만약 나였다면 어떻게 할까??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아….. 어째 생각해보니 우습다……

내가 뭐라고… 기껏해야 친구 이름을 가진 섹스파트너일 뿐인데 말이다.

답답했다.

민규가 그를 사랑한다고 하면….
민규는 솔직한 사람이니 아마 나를 똑바로 보며 헤어지자 할 것이다.

아니…
헤어지자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와 나는 친구일 뿐이니까… 내가 친구하자고 했으니까….


젠장….

 

 

 

어째서 또 여긴 건지……….

답답해서 마신 술에 취해서 비틀비틀 닿은 곳이 또 민규네 오피스텔이다.

도대체 넌 나한테 뭐니??
민규야…….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멍하니 민규네 집 문 앞에 서서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서 있기만 하다, 실수로 그만 초인종을 누르고 말았다.

막상 민규의 얼굴을 본다고 해도 할 말도 없는데, 그에게 돌아갈 거냐고 물을 용기도 없으면서, 결국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집 벨을 누르고 만 것이었다.


“어?? 뭐야 너?? 갑자기 사라지고… 전화도 안 되고!!”

문을 열고 내 얼굴을 보자 마자 떽떽 거리기 시작하는 민규가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작게 몸부림치는 민규를 품에 안았다.

이상하게도 그냥 안고만 있는 것으로 좀전의 그 초조함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실례했나 보군…… 이만 가야겠다.”

“아 아저씨……”

갑자기 민규 뒤로 그가 예의 그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럼…. 내일 보자…… 기다리고 있으마……..”

“아저씨도…… 참…….”

어느 새 내 품에서 빠져나간 민규에게 가볍게 입맞추고는 문을 나서는 그에게 민규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장난이라는 듯 가볍게 배웅하고 있었다.

우연히 본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이런 시간까지……
둘이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헤어진 옛 연인 ……..

다시 돌아가고 싶은 옛 연인……

그 밤…. 그 바에서 옷을 벗던 민규가 떠올랐다.

그 뇌쇄적인 몸짓으로 한 순간에 주위를 사로 잡았던 그의 아름다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의 솔직함……

이 밤……..
그와 민규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에게 돌아가고 싶은 거야??”

“뭐??”

“너도…… 그런 거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취했어??”

민규의 얼굴에 거부감이 떠올랐다.
늘 마지막엔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망설이게 만드는 그 짙은 혐오감 같은 거부……..

역시….. 난 안 되는 건가??

불덩이 같은 것이 저 뱃속 어딘가에서부터 솟아 올라 온몸을 집어 삼킬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불길은 나를 삼킬 듯 타오르다 결국은 민규를 향해 폭발하고 있었다

 “저 남자!!.. 저 남자에게 돌아가고 싶은 거냐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저씨가 뭘??”

“그럼 도대체 이 늦은 시간 까지 같이 있는 이유가 뭐냐고??”

이건 쓸데 없는 감정이다.
나에겐 민규에게 이런 말을 퍼부을 자격도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나를 휩쓸고 있는 이 불덩이는 나를 태울 듯, 민규마저 삼킬 듯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말해봐!! 그가 왜 여기 있었는지??”

“여긴 아저씨네 집이니까!!”

당황하며 나를 피해 주춤거리던 민규는 벽에 막혀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게 되자, 내게 소리 쳤다.

“여긴 아저씨네 집이니까… 아저씨가 오는 게 당연하잖아……..”

민규는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갑자기 잔뜩 겁먹은 민규는 몸을 웅크리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가엾은 모양으로 주저 앉은 민규를 보며 더 큰 분노에 사로 잡혀 있었다.


“뭐?? 그게 무슨 뜻이냐?? 그 사람 집이라니??”

민규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이기며 원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이 섬뜩할 정도로 매혹적이라면 난 필경 미친 것일 테다………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것엔 독이 있다는 것을……..
결국은 나를 칭칭 잡아 메고 옥죄다가 나를 질식시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헤어질 때… 내 명의로 해주신 거지만……… 그래도 아저씨네 집이니까…….”

설마 했는데………..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정말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허망하다……….

 

 

“너…… 뭐야….. 하….. … 몸도 팔았던 거냐??”

 

 

결국은 산산히 깨어져 내리는 민규의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몸을 돌려 그 집을 뛰쳐 나가고 있었다.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민규가 몸을 팔았든……….
민규가 옛 남자에게 돌아간다 한들………….

내가 뭐라고……….
내가 대체 뭐라고………….

사랑할 것도 아니면서…………
사랑할 것도 아니면서…………


민규를 사랑할 자신도 없으면서…………….

 

 

 

 

 

 


추악하다.

나는 민규를 상처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 그를 상처 입히고…… 모욕한 것이었다.

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민규의 솔직한 눈에, 그의 당당한 요구에, 나를 원하고 있는 그의 솔직한 몸짓에……….

비겁하게도 나는 안심하고 있었던 거다.

완전히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다고 떠나지도 못하게 붙잡아 두고서………..

그런 내가 뭐라고……..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민규에게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인지………


어쩌면 민규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은……
사랑은 구원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민규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민규에게 약속된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추악하게 날뛴 것인가 말이다.

 

 

 


“오늘은 안 피하네??”

당의장 선거…… 만은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없어 정신 없이 취재를 마치고, 당사 안 간이의자에 늘어져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 왔다.

피하다니…….

민규의 목소리가 아닌데……..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지??
민규에게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서 도망친 지가 말이다……….

일 주일?? 열흘??

그런데 난 또 누구에게서 도망쳤던 것일까??

고개를 들어 내 앞에 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고급양복을 말쑥하게 빼 입고,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사람은……..


“정.. 현아……..”

“잊지 않았네………. 난 계속 모른 척 하길래……. 날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말야………”

그래………. 우연히 당사에서 널 본 후로 의식적으로 마주치려 하지 않았었다.
널 보면 추악하게 행동할까봐…….
혹시라도 네게 흔들릴까봐………..

그런데…….. 그거 아니??

난 원래 그런 놈이었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니 문제는 니가 아니라 어쩌면 나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왜 그래?? 왜 그렇게 다 죽어가는 사람 얼굴이야?? 실연당한 것마냥…………”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곁에 앉는 사람은……. 내가 꿈에도 원망하고….. 그렇게 아파하던 그였다.

그런데 말야……… 이것도 아니??
너 여전히 눈물나게 예쁜 건…………

그런데 이상하지……….

더 이상 너한테 향기가 나지 않아………..

늘 날 눈 멀게 했던 그 달달한 향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