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FlytotheSky
[연재] If I'm not in love with you (9)
highenough
2006. 2. 16. 01:20
이건 완전히 휘둘리는 거다…….
‘친구’가 되자는 말은 친구 사이에 섹스..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의도였다.
그건……. 그를 안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는 내 마음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민규다.
민규는 도무지 친구라는 개념과 섹스파트너라는 개념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 같다.
“친구면 외로울 때 더 안아줘야 하는 거 아냐??”
솔직하다 못해 가끔 개념이 없고, 개방적이다 못해 헤프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에 대해선 날카로우리만치 똑소리 나지만, 결국 생긴 것만큼 모질지도 못하고, 되게 예민할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너무도 순진한 얼굴로 저런 멍청한 소리까지 내뱉는 거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늘 동요하는 나였다.
‘’키스하자”
쌍꺼풀도 없이 커다란 눈을 위로 치켜뜨고, 주름 하나 없이 맨질한 분홍색 입술을 마치 모이를 조르는 아기 새처럼 모으고는 아무 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조르기 시작하면……..
거절에 약한 나는 또 바보 같이 속으로는 이러면 안돼…… 절규하면서도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마는 것이었다.
익숙하게 휘감기는 혓망울과 정확하게 성감을 찾아내는 그만의 노하우들…….
조그만 자극에도 금방 달아오르는 예민한 몸……….
내 손길에, 내 열기에 민감하면서도 솔직한 반응들………
남자치고는 너무도 부드럽고 유연한 몸놀림으로 나를 받아내는 민규의 모습은 나를 흥분에 휩싸이게 하는 만큼이나, 내 속의 어떤 가학성을 자극 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너를 거쳐갔을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네 속에서 환희와 절정의 순간을 맛보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게 되면 난 또 근거 없는 어떤 열기에 휩쓸려 그를 난폭하게 다루게 되는 것이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집착이고, 소유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잘 익은 분홍빛으로 상기된 얼굴이 잔뜩 젖은 채 절정의 안타까운 미소가 그려지고, 쾌락에, 희열에, 나로 인한 그 오르가즘에 진저리치는 것을 바라보면 나는 그대로 그를 반으로 갈라 씹어 삼키면 좋겠다고 말도 안 되는 열망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나쁜 버릇이란 것은 알지만, 나는 섹스할 때면 조금 난폭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은 미처 내버리지 못한 예전의 버릇으로 그 당시에는 그의 취향에 따라 그렇게 맞춰 주는 것이 좀 맘에 걸렸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습관처럼 남아 있어서 민규에게도 무리한 체위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민규는 그런 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예전의 그와 달랐다.
그는 섹스를 할 때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정확히 요구하고, 또 아프게 즐기는 것을 좋아 했다. 수많은 남자들과의 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행여 그를 놓칠까 전전긍긍 하던 나는 서글퍼도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규는 침대 위에선 되려 순종적인 편이었다.
직접적인 도발로 나를 당황케 하지만, 정작 침대 위에선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보다 상대를 더 많이 배려하는 것이었다.
적극성과 순종성…
어떻게 보면 전혀 매치 되지 않는 감정의 모순이 그의 행위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민규를 스쳐 갔을 수많은 남자들에 비해 민규의 인간 관계라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작고 왜곡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처음 그 때 느꼈던 그 혐오 같은 거부감처럼 말이다……
“으으……. 숨 막혀………”
꼬물거리며 투덜거리는 민규의 소리에 잠이 깼지만, 일어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목덜미를 간질이는 민규의 보드라운 머리카락도 좋고, 품 안 가득 묵직하게 안겨 있는 민규의 체온도 좋고, 맨살과 맨살이 맞닿은 그 느낌이 좋아서 나는 모른 척 민규를 더욱 끌어 안았다.
“숨 막혀 죽겠다구…… 황윤석!!”
제법 큰 소리에 슬쩍 실눈을 떠보지만, 등뒤로 안고 있었기에 눈 앞에 민규의 하얀 목덜미만 탐스러울 뿐 이 따뜻하고 포근한 시간이 끝나는게 싫어서 나는 냉큼 눈을 감아 버렸다.
“일어나라…… 응??”
날 깨우기로 맘을 먹었던지, 민규는 제 허리를 감고 있는 내 손을 끌어다가는 마디마디 앙 하고 깨물고 있었다. 순간 놀래서 흠칫 한 것이 들켰던지, 내 손가락 하나를 입에 물고는 일어나라고 다시 재촉이다. –그래야 뭐 앙이어낭내 항융성.. 이었지만….
“좀만……..”
일어나기 싫다.
이대로 하루 종일 자라고 해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우리 부지런한 민규님은 기어코 날 깨워야겠던지, 몸을 돌려서는 내 볼을 잡고는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어서 일어나봐… 저녁 때란 말야…. 나 배고파…..나한테 좋은 생각 있어… 우리 거기 가자…”
아무래도 작정을 한 모양이다.
결국은 항복한 나를 끌고 그가 간 곳은 처음, 민규를 만났던 바로 그 바였다.
그 곳은 이반들 사이에 꽤 알려진 곳으로 사회적 상류층들도 꽤나 드나드는 고급에 속하는 바였다.
평범한 시민인 나로서는 그 알고 있다 해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었겠지만, 예전의 그가 나를 이곳에 단골 비슷하게 만든 것이었다. 어차피 남자를 찾으러 매일 밤 드나드는 그런 것이 아닐 바에야 차라리 이곳에서 가끔 술을 마시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혹시라도 그를 마주칠까 조심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하룻밤 상대를 구하는 게 목적인 그에게는 이곳이 취향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의 바에서 나를 유혹하려고 옷을 벗던 민규라니….
“왜 웃어??”
그 날의 기억에 피식 웃고보니 민규가 새초롬하게 눈을 마주쳐 왔다.
“아니.. 그냥.. 그 날 생각나서……..”
“흐음…. 말해봐... 그 날 얼마나 취한 거야??”
“응??”
“얼마나 취했길래 그렇게 베드인 했냐고…. 너… 실은…. 그런 거 싫어하잖아…….”
민규가 알았던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순진한 사슴마냥 까맣다.
실은 그랬다. 다른 누군가였다면 분명 무시하거나 심하면 주먹이 나갔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난 처음부터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민규는… 그래… 어딘가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으니까…….
“…….. 예뻐서…….”
“뭐??”
“예뻐서 눈이 갔다고……. 그래서 그랬나보지………”
“……………”
무슨 생각인지 민규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몇 번 눈만 깜빡였다.
“…… 왜??”
“……… 그냥……… 암 것도 아냐…….”
고개를 작게 저어버리는 민규의 몸짓이 어딘지 가냘퍼서 나는 얼른 그의 손을 잡아 쥐었다.
“훗…. 뭐야…. 너 나 좋아하는 구나??”
잠깐 어이가 없었지만, 나도 그냥 같이 웃어 버렸다.
“흐음… 그러니까 천하의 황윤석도 유혹에는 약하다 이 거지??”
“응??”
“여기서 또 널 유혹하면… 어쩔 거야??”
“뭐??”
“후훗!!”
무슨 생각인지 장난기 가득 눈을 빛내더니 살짝 웃어보이는데…..
- 웃음 끝에 새빨간 혀가 윗입술을 살짝 훑고 지나갔는데, 순간 나는 민규가 입맛을 다시는 것 같은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
“왜…왜 …. 이래??”
느끼한 손으로 재킷 단추를 여는 순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벗어버린 재킷을 다리 사이로 쓱 빼어 들더니 내 머리 위로 확 집어 던지는 순간에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주민규!!”
“왜~~”
당황한 내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한 것 마냥 말꼬리를 질질 늘이면서 민규는 말릴 수 없는 몸짓으로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의 바인 만큼 끈적하게 녹아드는 노랫소리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는 민규의 섹쉬 춤에 여기 저기서 낮은 탄성이 들려 오고 있었다.
장난의 의도가 분명한, 게슴츠레 뜬 눈이나, 내 가슴을 붙들고 그대로 쓰다듬듯 내려 앉는 탄력 있는 몸짓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걸 어쩐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 들고, 아예 대놓고 휘파람을 불어 대는 짓궂은 사람들까지 있는데도, 민규는 전혀 아랑곳 않고서 점점 더 진한 손길로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분명 평소의 나라면 그대로 무시하고 일어났겠지만,
“어때?? 나 섹시하지??”
내 귓가를 진득하게 물어 당기며 물어오는 민규는……..
“풋!!”
정말 못 말리겠다.
이제는 아예 셔츠단추까지 풀어 대는 민규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진짜 못 말린다….. 주민규….”
“헤헤”
내가 끄는 대로 달랑 무릎에 올라 앉아서는 방싯거리는 민규랑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뭘 해도 예쁘니… 나란 놈도 정말 취향 하나는 엄청나게 일관성 있는가보다……
장난스럽게 입맞추어 오는 민규의 키스를 받으며 웃고 있는데 어디선가 민규를 부르는 낯선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 아저씨!!”
“역시 민규 맞구나……. 하하… 여전히 귀엽구나………”
“언제 오신 거예요?? 계속 미국에 계실 거라더니………”
“일 때문에 잠깐 나온 거다…… 얼굴이 좋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그럼요…….. 덕분에요…….”
많아야 마흔, 보이기엔 서른 중반쯤 보이는 남자는 민규를 향해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보자 마자 발딱 일어서서 그대로 그의 목을 끌어 안는 민규를 보며, 나는 좀전까지 민규를 안고 있던 오른 팔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에 당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인규는 좀 괜찮니??”
“그저 그래요… 그래도 병원에 있으니까 훨씬 편한가봐요……. 늘….. 고마워요…….”
“내가 병원비를 내는 것도 아닌데 뭐……”
“그래도요…….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나는 한 방울 눈물을 떨궈내는 민규와 그런 민규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추는 그 미지의 남자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제 눈물에 당황해버린 민규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그는 쉽게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친구……. 라고………..”
민규는 그에게 나를 그렇게 소개했다.
그것은 내가 민규에게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물음에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민규는….. 생각보다 상처가 많은 아이네….. 그 애를 품으려면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네…..”
직감적으로 민규의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민규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는 눈으로 내게 충고를 건네는 그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매너와 함께 나이에서 비롯되는 여유로움까지 몸에 밴 그야말로 상류층의 사람이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전신을 휩싸고 있었다.
전 애인…… 이라고 넘어가기엔 뭔가 매끄럽지가 않다.………
우위에 선 자의 너그러움 같은 태도로 이 남자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난 너에 대해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나는 네게 휘둘리고야 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