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FlytotheSky
[연재] If I'm not in love with you (5)
highenough
2006. 2. 11. 17:30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걸 보여 주듯 매끄럽고 단단한 근육으로 만들어진 몸이지만, 잠이 든 그의 몸은 생각보다 가벼워서 한숨마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지쳐보이는 얼굴로 곤히 잠든 그는 내가 그를 자신의 방 침대에 누일 때까지 깨어나질 못 하고 있었다.
조금은 과격했던 섹스 후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병원으로 내 달렸으니 이해가 가기도 하고, 이렇게 기절한 듯 잠이 든 얼굴이 왠지 안쓰러워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둬 드렸다.
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냉냉하게 굴다가…
겨우 그 따위 협박에 세상을 체념한 듯 모멸감 가득한 얼굴로 몸을 내어주다니….
게다가 아픈 동생까지…..
뭐야 도대체……..
어떤게 진짜인지 모르겠다.
기껏 유혹한 침대에서는 결국 모멸감 가득히 상대를 외면해버리면서…..
하룻밤을 위해 남자를 유혹하고……
제 안위를 위해 마음 같은 건 틈조차 주지 않으려고 하면서.……
부끄러움.. 같은 것은 모르는 사람처럼 다른 누구의 시선도 상관없이 제 아픈 피붙이를 단단하게 끌어 안을 수 있다니……
도무지 종잡을 수 가 없다.
협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의 제안이란 것은 어차피 ‘그’를 떠올리게 하는 그에게 퍼부은 나의 억지에 지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되살아 나는 그 때의 그 망령에게서……
묻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상처들이 여전히 어제처럼 벌어져 피흘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그에게 어거지로 부려본 객기에 지나지 않는 것을…..
실은 나란 놈… 남 아프게 할만큼 막 되먹지는 못한 바보라는 걸 그는 눈치 채지 못했나보다.
‘그’는 정말 쉽게 알아 차렸는데 말이다.
모르겠다…..
‘그’와 이이가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안다.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따르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흔들리다가도……
그 아름다움 때문에 도저히 그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 예쁜 것은 다 독이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나처럼 어리숙한 놈은 예쁜 것만 보면 눈이 멀어 죽는 줄도 모르고 모든 걸 다 바쳐버리니까 말이다.
물끄러미 내려다 보던 그의 지친 이마에 살며시 입술을 눌렀다.
따뜻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시리다.
“아직 장사 하시네요??”
꽤나 늦은 시각인데 아파트 입구 상가 쪽에 포장마차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어서, 차를 두고는 거꾸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이 드는데 거둘 수야 있나??”
가끔 어머니를 위해 어묵이나 순대 같은 것만 사다 날랐지, 앉아서 술을 마신 적은 없었는데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넉넉하게 웃으며 받아주고 있었다.
“원… 무슨 술을 그렇게 급하게 마셔?? 술에 체하면 약도 없는 거 몰라?? 국물 좀 먹어가며 마셔”
“하하… 고맙습니다…아주머니…”
소주 한 병을 연거푸 마셔대는 나를 보고 혀를 차며 국물을 내어주는 아주머니께 인사한다고 고개를 숙였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생각해보니 아침 나절부터 그의 집으로 찾아 갈까말까를 고민하다가 끼니를 놓치고 낮에는……. 큭……. 그와 침대에서 뒹구느라 끼니를 놓쳤다.
빈 속에 들어간 것이라고는 지금 이 술이 다니… 취기가 빨리 오르는 것도 당연한 것…..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술이 당기는지……
“크………..”
아주머니가 주신 국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금 들이킨 술 한잔에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젠장……. 남들은 다 술이 달다더만……..
나는 싸건 비싸건 간에 다 독하게 쓰기만 하더라……
맑고 찰랑거리는 소주 한 잔을 보면 시원하다 못해 달콤할 것 같지만, 결국 마시고 보면 혀끝이 아릴 정도의 녹슨 쇠맛뿐, 늘상 속으면서도 또 그렇게 습관처럼 마시는 거다.
크크…….. 그러고보니…. 난 너무 겉모습에 잘 속는 거 아닌가??
예쁜 건 사족을 못 쓰니…
당해도 싸지….
“뭐 속상한 일있어??”
“네??”
“어째 그렇게 술을 퍼부어??”
어느새 세 병째 병을 따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아주머니가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글쎄요…”
“왜?? 이렇게 잘생긴 총각이 차였을 리는 없고, 왜?? 애인이 말을 안 들어??”
“하하… 저 잘생겼어요??”
“그럼 훤칠하니… 여자 여럿 울렸겠구만…”
“에이…. 저 애인한테 차였는데요??”
“어이구… 누군지 눈도 없나.. 누가 이렇게 잘생긴 총각을 차??”
“하하 아주머니도 참… 말씀만도 고~맙습니다”
“허.. 이 총각 안 믿네?? ”
“크크 아주머니도 참… 저 차였다니까요??”
그럼요…
얼마나 지독하게 차였는데요……..
“처음 본 순간 얼마나 예쁜지…… 저게 사람인가 싶었죠….”
그래…….
처음 너에 대한 내 인상은 그랬었지……….
남에게 참 무심하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던 나인데 너만은 한눈에 보고 잊질 못 했지…..
남자라고… 스스로 미친 짓이라고…. 널 사랑하기 전부터 많이 많이 힘들었었다.
“너무 예뻐서 가까이 가는 건 꿈도 안 꿨죠… 근데 녀석이 먼저 다가왔어요…….”
그 노을….. 아직도 나는 그 때 내게 손을 내밀던 니 미소를 기억하고 있다…..
몇 번을 부정하려고… 너에게서 도망치려고도 했지……
하지만 넌 너무 예뻐서……. 난 결국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말리더군요…….. 소문이 나쁘다고… 집안도 좋고 얼굴도 반반하고..… 주위에 남자가 넘쳐났죠….. 그래도 믿었어요….”
친구들은 내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보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에 더 놀라고 화를 냈지………..
그래도 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널 사랑하기로 한 후부터는 말이다…….
“네…….. 사랑했죠……… 세상이 달콤하고…….. 사는 게 행복할 정도로……….”
널 사랑해서 좋았다.
널 사랑해서 기뻤다………
“녀석도 당연히 날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죠…….녀석 옆엔 결국 나밖에 없다고 자신했거든요……..”
수많은 이야기가 날 불안하게 만들 때도 있었지……..
하지만 결국은 너, 나한테 돌아 온다고…….
그래……. 항상 끝에는 너 내게 돌아 왔으니까………
조금 더 어른이 되면,……
널 완전하게 보듬을 수 있게 된다면………
그러면 넌 결국 내 품에서 쉬게 될 거라고 믿었다.
“예………. 모두들 쉽게 쉽게 사귀고 헤어졌는데 나랑은 모두가 놀랄만큼 오래 갔어요……… 주위사람들도 인정했죠…….. 정말 사랑하는 구나…… 너희……….”
널 험담하는 친구들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예쁜 너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너를 너무 쉽게 말해버리는 친구들에게 화도 내고 애원도 하고…… 꼭 증명해서 보여주고 말리라 괜한 다짐도 했다…….
참 많은 것들이 너로 인해 나를 휩쓸었지…….
열망….
분노…...
질투…..
행복……
환희……
그래….. 니가 집안을 위해 약혼을 해야 한다고 말하던 그 순간에도………
난 바보같이 널 더 품어 줄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절망했었지…….
널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기절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나를 때리고 때리다 결국은 외면해버리시던 아버지의 눈물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그보다 더 내 가슴을 찢어 놓았던 것은……….
네 입술이었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던 네 예쁜 목소리였다.
아아…….
그 때 처음 남자라는 것을 절망했다.
여자 였다면, 네 속에 내 아이라도 심어 놓고 네 발목을 잡을 수만 있다면…….
내 얼마나 빌었는데……..
“그런데……. 결국은 집에서 정해준 사람이랑 약혼하더군요…… 녀석 더럽게 부잣집 자식이었거든요……..”
“저런…….”
그동안 내내 조용히 듣고만 계시던 아주머니가 끝내 한 소리, 안타깝다는 듯 침음했다.
크크……….
미소 가득한 네 신부보다 그녀 곁에 선 네 모습이 더 눈물겹게 아름다웠었지…….
내 신부라고 믿었던 너……..
나 아닌 다른 이를 품에 안고 환하게 웃던 너………….
그래…….. 거기까지 였다면……
그만큼만 이었다면……..
나 좀 달라졌을까??
너에 대한 미움으로 피를 토하지는 않을 수 있었을까??
“예쁜 것들은 다 얼굴값을 하나봐요………”
널 그렇게 보내고 한동안 나는 그래……흔히 말하는 실연의 늪에서 힘들어 하고 있었지……
넌 다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난…. 나만이라도…….. 끝까지 널 사랑이라고 믿었겠지……………
“많이 파세요 …….. 아주머니……….”
휴………
바람이 차다……
며칠 따뜻해서 겨울 같지 않더니………
다시 매서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마음을 시리게 한다………..
[알잖아…… 나도 너 사랑하는 거…….]
사랑인 줄 알았다…….
약혼식이 끝나고, 내게 찾아와 다시금 관계를 요구 할 때도…….
사랑이라서……. 내가 그리워서 그런 줄 알았다…….
차마…… 남의 남자가 된 널 안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고지식한 내가 미워서……….
난 그렇게 힘들어했지만…….
니 눈 속에 짜증을 보지 못한 나를 탓해야겠지??
이런 날 답답해 하고, 결국은 널 채워줄 다른 남자를 찾아 나선 너를………
다른 남자의 흔적 가득한 몸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너를 보며……..
그래 그 때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넌 날 사랑하지 않았다.
나란 놈은 그저 충직하고, 데리고 다니기 좋은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으아아아아아아아!!!!!!!!!!!!!!!!!!!!!!!!”
그 때처럼 소리를 지른다.
그 때처럼 목이 찢어져 또 피가 나도………
이제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거다………..
그 때처럼 처절하게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그게 너와의 사랑이 내게 남긴 상처인 것이다……….
내 목에 핏덩이로 남은 상처인 것이다……..
내 앞에 누군가 다시 나타나도……. 난 결국 너 때문에 사랑할 수는 없을 테니까…………
“어이 황 군!! 편집장님 호출!!”
각 당마다 예비 총선 기간이라 여기저기 눈코 뜰새 없이 불려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쓸데없는 잡생각없이 일에 몰두할 수만 있어서 더 좋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 휘둘리는 나는 달갑지 않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인 것을………
더 이상 아름다운 남자는 사양이다……
“부르셨어요??”
“그래 이번에 특집… 니가 맡아라!!”
“에에?? 그건 김 선배가 하시기로 하신 것 아니었나요??”
“아… 김 기자는 지금 해외 나갔어…… 전부 다 맡으라는 건 아니고….. 이번 xx당만 맡으라는 거야….. 더구나 이번 감수는 전에 그 ooo 의원이 맡기로 했으니까….. 그 비서한테 연락해봐.. 알아서 해줄 거야……..”
“……….”
“어이 황윤석!!”
“………….. 다른 사람…. 안 되나요??”
“무슨 헛소리야?? 어여 나가!! 젊은 놈이 며칠 비실비실하더니…. 일 끝나면 보신시켜줄 테니 어여 일해!!”
젠장……..
엮이기 싫다고 했잖아?!!
그 사람도 그동안 나 안 봐서 좋았을 텐데……
“뭐해?? 전화가 너랑 눈싸움 하재??”
“아니요… 뭐…..”
주말… 그 날과는 또 다른 기분으로……. 한참을 전화만 보고서 망설이는 나를 보며, 선배 한명이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전화를 걸어야 했다.
일 때문이고, 공적이니까……
그런데…….
솔직히 그를 다시 한 번 마주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멋대로 그를 상처 입히고…….. 내 자신을 모멸해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일은 없었던 일인 양……. 묻어 둬야 하는 건지……..
아니 더…… 묻어 둘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짓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정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원나잇스탠드…….
그 밤조차 그를 밀어내지 못했는데…….
지금….. 그에 대해 더 많은 감정이 흐르고 있는 지금에……….
“이번 예비 총선 자료입니다……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아 …. 이 정도면 일단 충분할 것 같은데요…. 뭐 필요한 게 생기면 다시 연락 드릴게요….”
“네 그러세요……”
차고 냉담한 얼굴이라고는 해도 그는 항상 어딘지 모르게 생기를 품고 있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서만 품어져 나오는 그런 생생한 기운……
바닥을 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던 삶에 애착을 가지는 사람들이 가지는 그 맑은 기운을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유혹하는 색기와는 전혀 다른…….. 반짝거림 같은 그 생기가 그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그는 어딘지 모르게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뭐해요?? 대체… 정신 안 차리고…”
“응??”
“선배!! 일을 날로 먹어요??”
“뭐??”
“그렇잖아요?? 옆에 앉아서 가오나 잡고 일은 나한테 다 시키고……”
도무지 그랑 마주 앉아서 조곤조곤 일할 자신이 없어서 눈에 띄는 데로 끌고 온 녀석이 하필이면 특이였는지…. 새삼 나의 과오를 깨닫고 나니 머리가 아파왔다.
“시끄러워!! ”
“뭐가 시끄러운데요?? 확 강인이 불러요??”
“됐다… 됐어…. 잘못했다… 약속은 다시 잡았어??”
“…. 도대체 옆에 앉아서……. 정신은 안드로메다까지 갔다온거예요?? 약속은 무슨??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기로 했잖아요!!”
“아 그랬나??”
“쯧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향해 혀를 차는 정수의 뒷통수를 가볍게 내려쳐주고, 성급히 사무실을 떠나 나왔다.
역시나 우연이라도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그를 멍하니 쳐다만 보다가 시간이 흘러가버렸나 보다.
참… 주민규란 그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생기 없이 처연한 모습도 예쁜지……..
이건 병이다…….. 아 진짜.. 이거 혼자 몰래 정신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어디가요??”
“시끄러 임마!! 가서 자료 정리해놓고 메일로 보내…”
“아주 날로 먹어요 날로!!”
“저게!!”
“으학!!”
스물세 살인가??
좋을 때다…. 난 그 때… 뭐했더라?? 아 군대에서 휴전선을 지켰던가?? 큭큭
시끄러운 정수 녀석을 길가에 내버려 놓고, xx당 당사 쪽으로 차를 돌렸다. 각 당마다 내년 총선을 준비해서 여러가지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 때였다. 어쩌면 자신의 이익에 누구보다도 밝은 사람들….. 향후 4~5년 간의 우리나라의 정세가 그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난장판에 가까운 당회의를 구경하고서, 그래도 회의만 끝나면 언제 싸웠냐 싶게 삼삼오오 즐겁게 자리를 옮기는 국회위원들을 보며 혀가 다 내둘러지지만, 이제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주차장까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어딘지 스산한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그동안 갑작스럽게…….
오랫동안 묻어 두기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어제처럼 선명해진 이유는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 순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너를 우연히 다시 마주치는 순간을 말이다………..
가만히 문을 열어주는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내가 왜 다시 그의 앞에 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나를 이끈 발길은 차갑고 냉담하기 그지 없는 주민규 그의 오피스텔 앞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