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삼양라면이 급인기다.
이유는 다들 잘 아실테니 생략.




아고라에서 보면 삼양라면의 굴곡진 역사가 잘 나와 있는데..




삼양라면에는 내 어린 시절도 함께 있다.



서슬퍼렇던 IMF시절..
그보다 이전에 경기가 굳고 있을 때, 우리 아빠는 인사동에서 '골동장사'를 하셨다.
골동품이란, 그래. 사치품이다. 돈 있는 사람이 산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려고 할 때 골동시장에 돈이 돌고,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지켜두려고 하면 다 쫄딱 망한다.

내 기억에 IMF가 오기 1년 반쯤 전부터 골동시장에는 돈이 말랐다.
우리집은 당연하게도 망했고, 나라도 부도가 났었다.


빚이 많았다.
신파극 줄거리 같지만 엄마는 편찮으셨고, 아빠는 이렇다 할 수입이 없었다.
큰딸은 별볼일 없는 인서울대학교의 영문과를 갓 졸업해 알바 외에 그다지 할 거리가 없는 사람이었고,
작은딸은 여상 나온 뒤 월급 형편 없는 고졸월급쟁이로 살았고,
막내인 나는 고작 초등학생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는 매일 빚쟁이가 찾아오고 엄마는 병원에 가셔야 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빠는 시골에, 엄마는 병원근처, 작은딸은 친구언니네 신혼집에 얹혀, 큰딸과 막내만 한 집에서 지냈다.



큰딸은 그래도 막내를 먹여살려야겠기에 매일 늦게까지 일했고 막내인 나는 혼자서 끼니를 주로 해결했다.
초딩인 데다 어렸을 때부터 귀차니스트의 피를 타고난 나는 요리라는 건 거의 해먹지 않았다. 밥은 했었지만.
아, 물론 쌀이 없어서 1kg씩 사다 먹을 때도 있었고.


그 때 끼니로 먹었던 게 삼양라면이었다.
삼계탕이라고.. 삼양라면에 계란이라도 하나 넣었으면 좋았겠지만 그 때는 진짜 어쩔 수 없던 관계로 플레인 삼양라면을 즐겼었다.
가끔은 간식이 먹고 싶어서 늦은 밤 냉장고 한 켠에 남은 양파만 썰어 넣고 라볶이를 해먹기도 했었다.



그 뒤로 뭐 엄청나게 좋아진 건 아니지만 가족들도 웬만큼 다시 모여살게 되고, 그래도 여기저기 도움도 받고 장학금에 급식비 지원도 받아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도 다니게 되는 그 때에 비하면 아주아주 순탄한 삶을 살고 있다.



삼양라면을 다시 사자는 운동을 보니 그냥.. 옛날 생각이 난다.
나도 삼양라면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솔직히 옛날에 워낙 많이 먹어서 그 동안은 의도적으로 좀 피하기도 했었지만..
지금 다시 삼양라면을 먹을 때가 되었나보다.



Posted by high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