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말씀: 신명기 6:4 ~ 5, 레위기 19:18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서신서의 말씀: 야고보서 2:14, 17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서 10:25 ~ 37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12월 4일 강원용 목사

60년 전 오늘 이 시간, 처음 이 교회의 예배인도를 할 때 제 나이가 스물 여덟이었는데, 지금은 90살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 때는 팔팔한 청년이었는데 지금은 잘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특별히 반갑게도 그 날 제가 예배인도를 할 때 첫 설교를 해 주셨던 조향록 목사님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바로 그 곁에 앉은 권종철 의사는 그 때 아주 어린 학생이었는데, 우리가 기숙사에 있는 고학생들을 모아서 예배를 드릴 때, 천리교회의 북을 둘러메고 거리에 나가서 북을 쳐서 애들을 모아서 교회에 참석시킨 장본인으로 그 후 의사가 되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역할을 화천지역에서 해왔습니다. 이런 분들이 참석해 주신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경동교회 창립 60주년 예배에서 제가 설교하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40주년 때 “아마 오래지 않아서 여러분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라고 했는데, 이렇게 60주년 설교를 하고 있으니 그 때 한말은 주제넘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이 경동교회가 세워진 성서적 배경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이야기를 창립기념일에 꼭 하려고 보니까 이 이야기를 성경을 풀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오늘 예배순서에 세례식, 견신례, 성찬식이 있어서, 대단히 어렵겠다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이야기를 하려는데 대단히 미안하지만 혹시 성서에 대한 제 생각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고 싶으시면, 금년도에 제가 펴낸 [내가 믿는 그리스도] 책 속에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썼으니 읽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그 책을 읽으시라고 제가 말할 수는 없지만, 읽으시리라고 믿고 그 이야기를 중복하지 않겠습니다. 1부 예배는 2부 예배와의 시간간격이 짧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짧게 이야기 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2부예배도 시간을 가급적 지키겠으나, 시간이 넘더라도 뒤에 다른 모임이 없으므로 여러분이 회갑잔치날 원래 나이가 많으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니까 역시 나이가 많으니까 저런다라고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저녁 모임에 나왔던 분들은 우리 교회의 역사를 어제 이강백 집사가 쓴 드라마에서 자세히 보셨는데, 처음에 선린형제단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제가 간도 용정에서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저는 그 때 중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나이는 어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경을 쭉 읽다가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예수 믿는다는 말이 무엇이냐에 대해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나도 평생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본받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중학생들 4-50명을 모아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때 이 여리고로 가다가 길가에서 강도를 만나 피 흘리고 쓰러져 있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한국 땅에서 살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서 만주에 이민을 와서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하는 농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농민들은 불한당을 만난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사마리아 사람 노릇을 하려면 이 사람들을 돌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중학생들이 용정에서 멀지 않은 농촌마을 다섯 곳에 나가서 야학을 세우고 주일학교를 세우고 농민들이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일을 하다 보니 우리끼리 굉장히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졸업하면서 우리가 평생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살기로 약속을 하고 앞으로 평생 동안 우리가 함께 이 일을 해 나가자는 약속을 하고 흩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농촌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농촌은 우리나라에서 이민 간 사람들이 50호쯤 살던 동네를 일본사람들이 들어와서 다 추방을 해버렸던 곳이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인데 추방을 해 버리고, 일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겨울에 갈 곳이 없이 헤매다가 거기서 한 백리 떨어진 마창춘이라는 곳으로 와서 개척민 부락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마을에서 해방되기 바로 전까지 농민들과 같이 살면서 야학교를 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어서 서울에 올라오면서 38선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38선이라는 것이 일종의 강도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는데, 서울에 와보니까 제일 어려운 사람들은 학비가 끊어져버린 38선 이북에서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서울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의 일을 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 바로 ‘선린형제단’입니다. 이 선린형제단의 이 장소가 바로 일본사람들이 하던 천리교회였습니다. 이 천리교회를 얻고 여기에 기숙사가 있었습니다. 이 기숙사에서 38이북에서 온 고학생들을 먹고 살게 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주로 리어카를 끌로 돌아다니면서 이재민들을 돕는 구제품 (주로 보리쌀)을 구해다가 보리밥에 된장을 조금 얹어서 먹었는데, 제가 수입이 없으니까 밤에 나가 영어강습을 했습니다. 영어강습을 시키고 돌아오면 학생들이 배가 고프니까 보리밥을 다 먹고 남긴 것이 하나도 없어서 저는 자주 굶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시작하고 강도를 만난 사람이 누구냐 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민이나 38이북에서 온 고학생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38선이 생기면서 이북에서 월남을 한 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남에서 공산당과 반공을 하는 청년들이 두 파로 갈라져서 서로 죽입니다. 테러를 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지 모릅니다. 이 교회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3층 돌집이 있었는데, 그 집은 우익 청년들이 좌익을 잡아다가 때려 죽이고, 두드려 패고 병신을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공산당들이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좌익, 우익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매 맞아 죽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든 돌봐야 하고 이 38선 때문에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없어져야 된다라고 믿었습니다. 단순하게 배고픈 고학생, 배고픈 농민이 아니라, 이러한 강대국들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분단당하고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역사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이런 일이 생기도록 않도록 막야야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부터는 강도를 만난 사람이 바로 어떤 특정 가난한 사람뿐 만 아니라, 잘못된 사회구조에 의해서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모두 강도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선린형제단 이라고 예배드리다가 우리가 예배 드린다면 교회라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해서 이 교회이름을 성경의 야고보서를 따서 성야고보교회라 붙였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리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죽은 행위다 라는 말씀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교회라고 간판을 붙이고 그러한 증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성야고보교회니 뭐니 하는 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상한 것을 한다’고 하도 못살게 굴어서 서울 동쪽에 있으니까 ‘경동’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지금은 서울 중앙이니까 경중이라고 바꿀 수는 없습니다만, 이것이 이 교회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사회구조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5월 11일 남쪽을 영원히 갈라놓는 남조선 단독선거가 생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교회가 다 공산당을 때려부수기 위해서는 남조선의 단독정부가 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우리 교회만 반대하고 그것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이북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서도 굉장히 분노를 해서 예배 도중에 일어나 “이럴 수가 있느냐”고 소리지르기도 했지만, 우리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에 가장 큰 사건이 4․19였습니다. 사실 4․19의 주역이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죽었지만, 당시 고려대학을 이끌고 국회 앞으로 갔던 박상원도 우리 교회 학생이었고, 서울대학 총학생회를 이끌고 4․19를 일으킨 위원장 윤식과 그때 간사장을 한 이영일은 지금 우리 교회의 집사입니다. 6․3사태 역시 우리 교회나오는 이종율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5․16이 일어난 후에는 용공으로 몰려서 많은 이들이 잡혀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때 그것에 저항했는데,  MBC 텔레비전이 크리스마스 예배를 중계하는데, 설교 시작하자마자 청와대에서 와서 뜯어내갔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계속 내려 온 우리 교회의 역사였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에는 강도만난 여리고 길가의 사람이 독재정권 때와는 달라지게 됩니다.

그 후에 강도만난 사람은 여러 모양으로 바뀌더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강도만난 이웃을 돌보는 믿음과, 실제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를 ‘신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를 정치적, 용공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밤예배를 드리는데 밖에 좌익인지 우익인지 알 수 없는 테러단이 왔습니다. 테러단이 왔다고 해서 조향록 목사 부인과 내 아내 둘이서 밖에 나가 보니 우리와 같은 날에 세워진 어느 교회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 좌익, 우익 양쪽에서 항상 몰려오고 어느 정권에서나 몰려왔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가 할일을 하려고 애를 써 왔습니다.

강도 만나 피 흘리는 사람을 보면서 지나가는 목사의 교회, 제사장의 교회, 장로나 집사격인 레위사람의 교회, 그런 교회는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학자가 와서 ‘어떻게 하면 내가 영생을 얻겠습니까, 내가 율법학자인데 당신이 알것 아닙니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오늘 레위기서와 신명기에 나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을 틀렸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틀린 게 아니라 그대로 행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내 이웃이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서 한 얘기가 이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강도만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지만, 여기서 가장 주목할 것은 지나간 제사장 행렬들은 누구냐, 레위사람들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보기엔 수만 명쯤 모여서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그런 교회의 교인이 얼마쯤 모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또한 이 강도만나 쓰러진 역사의 한가운데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근본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에서 사마리아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길은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야 됩니다. 즉,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야 됩니다. 둘째는 율법을 지켜야 됩니다. 셋째는 회당이나 성전에 나가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세 가지를 모두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는 율법도 모르고, 아브라함의 후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회당에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어떤 장사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방인들은 죽은 다음 지옥에 가서 지옥의 유황불을 때는 땔나무가 된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이방인 사마리아 인을 가르켜 “이 사람이 바로 내가 말하는 이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여기에서 저는 제가 섣불리 얘기하면 제 설교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봐 이야기를 길게, 자세히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오늘의 우리가 이 역사 가운데서 우리는 누구냐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과연 이 사마리아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바로 얻을 사람은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서 섬기는 사람인데, 예수님은 그것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율법학자가 나와서 ‘내가 율법을 지킨다’고 하니까 ‘좋다, 너 그대로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교회 집사가 되고 장로도 되고 교회 일을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강도만난 역사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령 사도바울이 말한 ‘할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느냐가 문제다’는 것이 교회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저는 오늘의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이 천당에 들어가는 입장권이지만, 그 세례도 카톨릭은 ‘카톨릭 세례를 받아야 하고, 개신교 세례는 무효다’라고 주장하고, Orthodox는 ‘Orthodox 세례를 받아야지 다른 세례는 무효다’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교회 신도가 카톨릭 신도와 결혼을 하려면 카톨릭에 가서 영세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카톨릭에서는 주례를 안해줍니다.

카톨릭과 우리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저는 캘커타에 살던 마더 테레사가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불교도가 아니고 아마 앞으로도 불교도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1965년도에 불교와의 대화를 했으므로 우상을 숭배했다라고 야단이 났었습니다. 그 때 경동교회니까 견뎌 냈지, 못 견뎌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님 이야기 중에 지나가다 호랑이가 굶어 죽어 가니까 내 몸을 먹고 너는 살아라 라고 하는 그 ‘자비’의 정신은 불교니까 구원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뜻밖에도 정토회 친구들이 참석했습니다만, 저는 저 정통회 법률스님들이 하는 일을 보면 바로 이 어려운 역사속에서 사마리아 사람의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이냐 라는 대답은 카톨릭신자로 1952년에 세상을 떠난 데하르도 샤뎅이란 사람이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역사 속에서 불한당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없이 피흘리고 죽어갔습니다. 그가 죽어 감으로써 세상에 사랑의 인력권이 생겼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곧 생명이다. 사랑이 지배하는 그 원내가 우리가 사는 생명권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우리 행동과 삶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강도만난 사람이 38 이북에서 넘어 온 고학생일수도 있고, 농민일 수도 있고 오늘 이라크에서 피 흘려 죽어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바로 예수님이 바로 이 강도 맞아 피 흘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굶주린 사람에게 네가 먹을 것을 줄 때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줄 때 병든 사람을 돌볼 때 너는 그 사람을 돌본 것이 아니라 나를 먹인 것이다. 굶주린 나를 먹여 주었고 헐벗은 나를 입혀 주었고, 병든 나를 돌보아 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이북에서 굶어 죽어가는 동포가운데 계시고, 이라크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파키스탄 지진으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저런 고통 속에 현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 곁으로 참으로 가까이 가지 않는 한 우리들이 무슨 교파인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60년 역사를 맞습니다. 60년 전 그때의 한국이 아닙니다. 4․19나 5․16 때의 한국이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과 세계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강도를 만나 피 흘리는  사람들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저는 황우석 교수가 고침받을 수 없다는 절망 속에 있는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서 줄기세포로 살길을 만드는 데, 난자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다라는 것이 무슨 교리에서 나왔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오면서 라디오를 들으니까 불교의 총무원장은 황교수같은 사람을 도와서 불치병환자를 살리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시 기독교가 불교에 빼앗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파키스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작년 인도네시아에서 죽어간 사람들에게 누가 강도노릇을 했습니까. 미국 대통령 부시는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아침 5시 반에는 꼭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술 한 잔 안 마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이라크에 가서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런 기독교, 그것은 부시의 기독교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난 2000년 동안 그 수많은 전쟁 가운데 기독교가 일으킨 전쟁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렇게 생태계가 다 죽어 가고 결국 파키스탄 같은 사건이 터지고 있는데 이것을 위해서 실제로 교회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런 점에서 제가 그만 두고 난 후에 이북에서 온 탈북자들을 돌보고,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병을 도와주는 일, 또한 베트남에 가고, 금년 우리성가대가 유럽에서 사람대접을 못 받는 정말 강도만난 사람들인 집시들을 찾아가서 음악회를 해 준 일은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저는 칭찬만하고 끝날 수는 없습니다. 이것으로 만족해 마십시오. 우리가 돌보아야 할 강도만난 사람들을 직시하고, 우리가 가서 그들을 돕는 일을 행동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 교회도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인력권 안에서 이루어진 이 공동체가 진정 오늘도 내일도 역사 속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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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가까운 분의 말랑말랑한 뇌에 이렇게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신 원래의 그분께 더욱 감동하게 된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내 안에 계신 그분께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참고로 이 설교는 작년 12월 4일 것으로 황 씨가 쌩쑈한 것이 밝혀지기 전입니다.)
Posted by high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