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highenough




국회의원 비서관은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같은 5급 공무원들 중에서는 보수가 가장 좋은 공무원이다. 별정직이라 함은 좀 나쁘게 말하면 비정규직이기도 하지만 우리 의원님은 뭐, 선거법 위반으로 짤릴 리는 없으니 최소한 4년은 보장되는 직업이다. 재선이 문제일뿐.


뭐 그 집을 벗어나는 데는 보수 좋은 직장이 가장 훌륭한 구실이었으니까. 내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직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나의 이런 위치를 뒤흔들 수도 있는 사람을 마주치고 만 것이다.





If I'm not in love with you








“처음, 뵙습니다. 황윤석입니다.”



물론.
이 바닥이 넓다면 넓으면서도 좁다면 한 없이 좁기 때문에 이런 날이 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어느 장소에 가면 그 중에 3분의 1정도는 벌써 나랑 자봤다거나..


그렇다고 내가 무분별하게 아무하고나 뒹구는 형편 없는 놈은 아니다. 꽤 진득하게 만나던 애인도 있었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바빠서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을 만날 틈도 없는 게 사실이다. 다만, 스트레스가 좀 쌓였을 때 애인이 없는 경우 하룻밤 자고 마는 사람들이 아주 약간 명 있었을 뿐.



만나게 된 상황과 서로의 위치가 위협적이었을 뿐이지, 사실 이렇게 침대가 아닌 곳에서 하룻밤 상대를 만나는 일은 몇 번 겪었었다. 누군가는 질척하게 굴기도, 다른 누군가는 쿨하게도, 또 다른 누군가는 당황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은 이런 상황이 처음인지 참 얼굴에 표가 확연히도 난다.


"황 기자님은 굉장히 젊어 뵈는데 올해 몇이시죠?"
"스물여섯입니다."
"그럼 우리 주 비서관 하고 1년 차이? 아니, 동년배인가? 편하게 자주들 만나고 그래요."
"아, 네."
"저번에 팩스로 보내주신 질문서에 대한 답변은 여기 있고요, 그 외 저희 의원님 보도자료들입니다."
"우리 황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내가 복지위라서 별로 특출날 얘기는 없어요. 그래도 우리 황 기자님만 믿습니다."
"아, 예에.."
"의원님, 4시까지 출판기념회 가시려면 지금 일어나셔야겠는데요."
"아, 그런가? 그럼 황 기자님 만나서 반가웠어요. 나는 박 보좌관이랑 갈 테니까 주 비서관은 황  기자님께 설명 더 잘 드리시고."
"네."
"안녕히 가십시오."


국회의원이 얼마나 더럽게 피곤한 직업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저 사람들은 심지어 믿음직하게 악수하는 법까지 연구한다.


"뭐, 더 궁금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ㄴ.. 네?"
"없으시면 시간 더 낭비하지 말고 이만 일어나서 각자 할 일 하죠. 한가한 사람들도 아닌데요."
"그럼.."
"아까 제 명함도 받으셨죠? 혹시 질문하실 거 있으시면 그리로 하세요."
"네.. 저기.. 저.."
"네?"


허튼 소리할 거면 빨리 찢어지자고.





"저기 혹시 그 때.."











마이 갓.





"아, 네."
"맞으시죠..? 그 분.."
"그런데요?"
"아니오.. 그냥.."
"그럼 일어나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또 오른쪽 눈썹 끝이 어린이 그림책에 나오는 마녀처럼 치켜 올라갔겠지만, 한껏 쳐올라간 신경질에 그 따위는 무시하고 싶다. 대체 무슨 주변머리로 기자씩이나 한다는 건지 심히 저 사람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그럼 다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어쩜 끝까지.
악수하자고 손까지 내미는 통에 예의가 있으니 내 차마 거절할 수는 없어 마주 잡긴 잡는다만.






- .. 하앗.. 앗.. 아흑..
- 학.. 학.. 학.. 학..






잠시 잠깐, 그의 엄지가 손등을 스치는 순간에 그 날의 영상이 뇌리를 스쳤다.



























국회까지 걸어서 10분인 오피스텔에 밤 12시가 다 되어 들어와보니 가로등에서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불빛에 비친 파란 시트의 내 침대에 그 날의 영상이 새삼 되살아난다.





젠장.
꽤 만족스러웠었다. 그 사람, 황윤석이라는 사람과의 섹스는.




사실 발단은 그 놈의 잭대니얼이었다. 국회에서 일하게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주량이 한창 두려울 게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나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잭대니얼 폭탄주였다. 그 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 탓도 없진 않지만 잭대니얼 폭탄주 두 잔에 평소의 페이스를 완전히 잃었던 나는 어쨌든 그 취했던 와중에도 반반한 놈을 꼬시는 데 성공했던 모양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제어는 하지 못하는 묘한 상태.

진짜 문제는 그 다음.
왜 하필 위험천만하게도 내 오피스텔로 데려왔었느냐는 거다. 그 점에서 이미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한 마디로 맛이 갔었던 거다. 그래 뭐, 남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남자친구를 하루쯤 재울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건 넘어간다고 쳐도 같은 건물에 같은 의원회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는 말이다. 술김에 어디 소리라도 크게 질렀으면 그 날로 나는 그 지긋지긋한 집으로 돌아가야 되는 거 아니냔 거다.
지금 생각해봐도 미쳤었다고 밖에는..








"오늘 뭐해?"
"뭐?"
"왜? 내가 양복쟁이라서 매력 없어? 그럼 벗을까?"



그래, 난 취했었다. 근데 문제는 이게 깨고 나서도 생각이 난다는 거다. 어지간히 나의 이성은 쓸만 한가보다.
근데 쓸만 하려면 좀 제대로 쓸만 하던가..
그의 밍숭밍숭한 반응에 옷을 하나둘씩 벗기 시작했더랬다.


사람들이 죄 쳐다볼 수 있는 바 한 가운데서 그랬으니 앞에 선 처음 보는 남자 씨께서 오히려 당황한 것은 자명한 일. 황윤석 씨는 하나도 안 취한 모습으로 옆에 사뿐사뿐 떨어진 내 옷들을 주워다가 나를 감싸서 고대로 끌고 나와서 바로 직행한 곳이 내 오피스텔이었던 거다. 그게 다 취한 것이었든, 안 취한 것이었든 나야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별상관도 없었다.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런 남자는 원래라면 질색팔색을 했겠지만 역시나 술김이었던 나는 장단을 잘 맞춰주고 침대까지 걸어가면서 '날 잡아잡수' 하면서 옷까지 벗어 바쳤다.

맨몸에 하나도 벗지 않고 있는 옷의 감촉이 쓸리면서 술을 마셔 상기된 피부에 더욱 차갑게 닿았던 기분이 지금 다시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양쪽 어깨에 손을 얹더니 팔이며, 등을 뜨거운 손으로 훑던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입술에 머물던 키스는 어느 새 귓불이며 목으로 넘어가서 쇄골께를 진하게 빨고 있었고 나는 뒷걸음질로 침대까지 밀어 붙여지고 있었다. 유혹한 건 내 쪽이었는데 어째 당하는 느낌이 불쾌한 것도 같았다.
혼자만 벗어서 먹으라고 준 게 억울해 그가 입고 있던 니트를 말아올렸더니 보기 좋을 정도로 잡힌 근육이 가뜩이나 오른 흥분감을 고조시켰다. 억울하지만 충동질한 쪽이 먼저 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좋지 싶어 그를 눞히고 엎드려서 그의 벨트 버클을 풀었다. 속옷 위로 불룩 솟은 그의 페니스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속옷을 벗겨내자 중력을 거부하듯 바짝 서는 그의 페니스를 끝부분부터 간질간질 핥았다. 입에 그의 페니스를 담은 채 숨을 쉬느라 가쁜 내 숨소리와 혀와 입의 움직임으로 질척한 소음이 방안에 가득찼다.


.. ㅊ... 츕.. 츄르.. ㅂ..
"후우.. 후우.. 아아.."


입 속 깊숙이 그의 페니스를 물고 위를 올려다보자 그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 펠라치오를 즐기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어딘가 마음에 안 들어 다시금 억울한 생각이 든다. 피스톤질을 하듯 고갯짓을 몇 번 더 해주고 그의 위로 기어 올라가자 갑자기 내 허리를 강하게 잡아당겨 돌려 눕히더니 숨을 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입술을 몰아붙이며 자신의 흥분감을 옮기기라도 할 듯이 내 허벅지에 뜨거운 그의 페니스를 문질러댔다.

"흐읍.. 흡.. ㅎ.."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쏟아내며 그의 키스가 서서히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내 페니스를 쥔 지 오래였다. 유두를 바로 공략하지 않고 서서히 주변만을 애태우며 애무하는 그의 혀가 얄밉다. 한 손은 그가 깍지를 끼고 있어 여의치 않아 자유로운 한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얄미운 혀가 그제서야 유두를 농락하기 시작했다. 옆구리를 따라 간지럽히듯 내려가는 그의 손놀림이 여간 노련한 게 아니었다.
섣불리 풀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아랫입술을 습관처럼 깨물었다. 참고 있는 신음 소리를 들은 건지 그가 몸을 일으켜 자신도 앉고 나도 앉혔다. 그의 입술이 얼굴로 다가와 코끝을 살짝 문다. 예상외의 행동에 입술이 벌어지자 그 틈에 다시 얄미운 혀가 입안에 침투한다. 한 손으로 침대 옆 첫 번째 서랍장을 열어, 보지도 않고 뒤적뒤적 콘돔을 꺼냈다. 그를 바로 눕히고 반대 방향으로 엎드려 그의 페니스에 옷을 입히는 동안 그 역시 애널 근처를 혀로 애무하면서 서랍장에서 어렵지 않게 윤활제를 꺼내 놓았다. 공사를 마친 뒤에도 애널의 감각이 아득해져 한참이나 그대로 엎드려 그의 골반에서부터 다리로 이어지는 부분을 어루만지며 민감한 곳에 닿는 그의 혀를 느꼈다. 일부러 요란스럽게 할짝 거리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 울리는 것 같다.

"핫.. 으응.. 아앗.."

윤활제까지 공사를 마친 뒤에 돌아 앉아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삽입을 시작했다. 어려운 체위긴 하지만 내 테크닉도 테크닉이려니와 그의 크기도 상당한 편이라 상하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깊숙이 치닿는 느낌에 교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도 지금까지와 달리 상당한 쾌감이었는지 자못 심각한 표정이 된다.


"허엇.. 헉.. 허억.."
"아흑.. 으음.. 앗.. ㅇ.. 으응.."


뜨거운 그의 손이 엉덩이를 감싸자 애널이 더 꽉 조여진다. 내가 몸을 뒤로 젖히면서 그의 상체쪽으로 뻗은 다리를 그가 잡아 발가락부터 애무하기 시작한다. 야릇한 쾌감이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상체를 뒤로 젖힐수록 안쪽으로 닿는 쾌감에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가 된다. 조금 더, 조금 더 느끼기 위해 조금 뺐다가 다시 깊게 삽입하기를 반복한다.

"학.. 하악.."
"으음.. 조금만.. 더.."


무의식 중에 흘린 소리를 들은 건지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잡고 있던 다리를 벌린다. 나를 눕히더니 내 등 아래로 손을 넣어 어깨를 단단히 잡고 강하고 깊게 삽입하기와 얕고 빠르게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올려 붙이는 힘과 쾌감에 고개가 다 내저어지면서도 몸은 도망치려는듯 마구 비틀어졌다. 손안의 모래가 우수수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괜히 팔을 뻗어 시트자락을 꽉 쥐었다.

"음.. 흐응.. 하읏.."
"후우.. ㅎ.. 허어.. 억.."


어느 샌가 그가 힘들어 보이는 나를 위해 허리에 베개를 받쳐주었다. 뭐 그래봤자 다 저 좋자고 하는 짓이었다. 무의식 중에 자꾸 그를 더 깊이 끌어들이려 내 무릎이 굽혀지자 그는 몸을 틀어서 뿌리까지 완전히 다 삽입해버렸다.


"아아.. 흐응.. 으으응.."


어서 절정에 닿고 싶으면서도 영원히 이 쾌감이 지속됐으면 하는 부질 없는 바람.
벌린 내 다리 위로 엎드려서 완연히 끼워 맞춘 체위가 되자 그가 속도를 더했다.


"핫.. 핫.. 어헉.."
"아악.. 흡.. ㅎ.. 아아.. 흐응.. 읍.."


쾌감이 속수무책으로 퍼져서 손끝, 발끝이 움직일 방향을 잃는다. 그의 손이 한쪽 손을 깍지 껴 잡아왔다. 그토록 깊은 곳까지 부딪쳐 오는 느낌은 처음 느끼는 것만 같다. 손가락 마디 관절 하나 하나가 풀어지는 것 같다. 점점 강하게 움직이던 그가 일순 동작을 멈추고 몸을 다시 돌려 부드러운 키스를 선사했다. 달큰한 혀를 더 가둬두려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의 손이 감긴 내 두 팔을 지나 몸을 스쳐 엉덩이를 더 가까이 잡아당겼다. 입술로는 여전히 부드러운 키스를 하면서 다시 서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로 다시 긴장된 애널에 그의 페니스가 가득 느껴졌다.

그가 절정에 거의 닿았다는 느낌이 왔다. 이제 눈을 감을 차례였다.
여느 때처럼 눈을 감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눈을 감지 않고 그가 절정을 토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 역시 술기운이었을 거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눈 뜨고 보지 않으니까.

"아학.. 하아.. 하.."
"읍.. 으으.. ㅂ.."


사정하는 순간의 남자는 다 어린 애 같다. 다른 어떤 원하는 것도 없고 단지 이 순간 절정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단순함에 찌든 어린 애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지극히 단순하고 동물적이다. 늙은 남자도,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구의 청년도 그 순간만큼은 다 어린 애가 칭얼대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일말의 쾌락을 애타게 구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 절정의 그 순간에는 곧 다가올 쾌감을 알면서도 괜히 조바심이 난다. 나도 남잔데 그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꼴 보기 싫다.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어쨌든 눈을 감으면 그 때뿐이니까.

그러면서도 나는 그 남자의 숨막힐 듯한 절정을 지켜 보았다. 잔뜩 열에 들뜬 것 같은 느낌은 내가 생각한 대로였지만 아주 미묘하게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살풋 미소까지 띠고 있는 것 같았다. 멍청해 보일 정도로 오히려 평온해 보이기도 했다. 그냥 단순히 개인차였을까.

그는 사정 후에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내 어깨에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 가며 잠시 내 위에 엎드려 있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고 나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페니스를 빼냈다. 침대 옆의 티슈를 뽑아 그를 감싸고 있던 콘돔을 예쁘게 싸서 침대 옆에 대기하고 있던 작은 휴지통에 버리고 아직 후희가 채 가시지 않은 그의 몸에 묻은 정액을 가볍게 혀로 처리해주었다. 또 다시 그의 입술이 파고 들어 혀가 끈적하게 얽히기 시작했지만 과음으로도 모자라 과섹스까지 감당하고는 차마 출근할 자신이 없어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알람 시계를 세팅하고 앞에 앉은 남자-그 때는 황윤석 씨인 줄 몰랐으니까-에게 지극히 필요한 말을 했다.

"저 7시에 일어나서 8시에 출근해요."

하고 베개를 정리해서 잘 태세로 눕자 그도 내 옆에 눕더니 강아지 새끼 마냥 옆을 파고든다. 원나잇에, 먼저 유혹한 주제에 한 번밖에 못 대줘서 약간 미안한 마음에 배를 가로질러 두른 팔이 무거워서 숨 쉬기가 조금 곤란했어도 참고 잤다.


그러고는 끝.
출근할 때 그에게 열쇠는 관리실에 맡겨 놓으라 메모를 남기고 나는 먼저 나왔었다. 어지간 해서는 더 만날 일 없을 테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일 관계로 또 만나다니.
기본적으로 상관 없는 일이어야 맞지만 그렇다고 또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온몸의 말초신경이 다 후들후들 떨리는 그 밤이 저 사람 뒤통수만 봐도 스치는, 참 낭패스러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한들 무엇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고 저 사람도 자신의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섹스가 좋았다고 해서 그와 사귀거나 할 생각도 전혀 없다. 지금의 나는 솔로인 내 자신이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 쪽에서만 협조가 잘 된다면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은 없다. 지난 번의 모습은 조금 불안했지만 말이다.




"주 비서님, 이것 좀 정리해서 **일보에 팩스 넣어주세요."
"네."
"그리고 그 전에 봤던.. 황윤석 기자였던가? 기사 나가기 전에 미리 좀 볼 수 있느냐고 연락 좀 해봐요."
".. 네.. 작년 보건복지부 예산집행 기록 지자체 별 분석 결과 정리는 책상 위에 올려놨고, 오늘 아침 주요 일간지 중에서 복지 관련 기사와 주요 기사 스크랩도 준비해놨습니다."
"수고했어요. 박 보좌관은 새해 예산안 검토해서 안일한 구석 꼭 찾아내주시고요, 조 보좌관님은 오늘 저랑 사회 복지 정책 포럼 토론 준비 좀 합시다."
"알겠습니다."
"김 비서는 박 보좌관님 옆에서 거들어주시고.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시다."
"오늘 하루도 바쁘게 보냅시다!"
"예."


우리 의원님은 초선 의원으로 꽤 젊다. 청렴한 탓에 빚도 많다. 성격은 곧은데 고위 당직자 눈치를 봐야 될 때마다 당에서 오래 일하신 조 보좌관님과 상의를 하신다. 피곤한 인생이다.
복지위 소속이긴 하지만 전공은 사학과였다던가. 대학원은 법정계열로 다니셨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사법고시를 치실 생각은 전혀 없으셨다고 한다. 대학 때는 PD계열 운동권이셨다고 하니 그럼 뭐 복지위가 나름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자리로 돌아와서 포스트 잇에 할 일을 적어 눈앞에 척척 붙인다. 제일 처리가 빠를 것 같은 순서를 꼽아보는데, 쓸 적에는 잘 몰랐다가 문득 뻔뻔하게도 내 글씨로 적은 '황윤석 기자에게 연락'이 보였다.

명함이 어딨더라..
망설여지거나 말거나 이럴 때는 굉장히 유용하게 돌아가는 내 사무적인 사고는 최근에 받은 명함을 뒤적이고 있다.
여기 있다. 황윤석..

- 황윤석입니다.
"안녕하세요. ○○○ 의원실 주민규 비서관입니다. 기억하시죠?"
- 아, 네..
"저번 인터뷰 건으로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 예, 그러세요.
"기사가 나가기 전에 좀 먼저 볼 수 있나 싶어서요."
- 네?
"어려울까요? 어려우시면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만.."
- 아.. 아니오. 그렇지 않아도 뭐 궁금한 것도 있고, 사진 촬영 스케쥴도 잡아야 하는 참이라서 연락 드리려고 했어요.

아, 그렇다. 사진 촬영.
잡지 기사니까 그런 게 있구나.


"아, 예.. 사모님도 계셔야 할까요?"
- 사모님은 괜찮고요, 의원실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을 촬영하는 게 어떨까 하는데요..
"장소도 의원실로 하나요?"
- 햇빛만 좋으면 가능합니다. 언제 여유가 되시는지..
"이번 주는 일정이 꽉 차 있으시고, 다음 주 수요일에는 정기 조찬 모임 외에 아직까지 다른 일정이 없으십니다."
- 그러면 제가 다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괜찮겠죠?
"네.. 그럼 기사도 그 이후에나 확인할 수 있는 건가요?"
- 그렇.. 죠.
"알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예. 아, 그리고요..
"예?"
- 더 여쭤볼 말씀이 있는데 그건 만나 뵐 때 하겠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도 관련이면 지금 물으셔도 상관 없는데요."
- 전화로는 좀 곤란하고요.. 어쨌든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에.."


이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도 계속 부딪칠 일뿐이라니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근데 이 사람은 왜 자꾸 만날 일을 만드는 거야?
그냥 당연한 일인데 나 혼자 과민한 건가..
Posted by high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