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로드무비' 유감

 | 잡담
2006. 2. 1. 20:32
 


'그래, 한번 보기나 하자'
요런 생각으로 안 될 일이지만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로드무비'를 보았습니다.


아-_-감상은 참 한 마디로 유감입니다.
개봉 당시 이반사회에서 '로드무지 안 보기 운동'이 벌어졌었다고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물론 영화를 안 봤으니까 별 생각이 없었는데, 보고 나니 이유를 좀 알겠네요. (뭐 이건 그 영화 메이킹필름 중 스태프 인터뷰에 '동성애자, 죽여버리고 싶죠.'라는 발언 때문이라고도 합니다만)

음..
사실 저도-_-황정민 씨만 아니었으면 중간에 확 끌 뻔 했는데요.
모르겠습니다, 저도. 왜 유감인지. 뭔지 모르게 기분이 나쁜 이유를 모르겠는데 기분이 나빠요. 왜일까요.
해피투게더처럼 시작해서 아이다호처럼 끝났다는 심영섭 씨의 평은 이해할 수 있지만 칭찬받을 만한 영화였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면에서..

대식은 석원을 사랑해서 지켜주려고 하나 석원이 마침내 떠나자 자살을 기도하고 마지막 순간에 둘은 기적적으로 소통-감독은 둘이 꼭 섹스를 했다고 보지는 말아달랬지만 어쨌든 일단 그렇게 보이는-하게 된다는, 아주 극히 단순화시키면 뭐 이런 줄거리입니다.

대식이라는 인물이 사랑 같은 거 안 한다고 등장하면서 첫눈에 석원에게 반하는 게 사실 좀 웃겼고요. 일주라는 인물이 게이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매우 전형적인 인물로 나온다는 것도 사실 좀 반감이 드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요. 게이를 사랑하는 여성. 그래서 이루어지는 삼각관계.

이런 거 저런 거 치우고라도, 대식의 석원에 대한 사랑은 비엘스러운 느낌마저 날 정도입니다. 억지스러워요. 영화를 리얼리티만으로 논한다는 건 감상평으로서는 저질이지만 그래도 감독의 인터뷰-씨네21 2002년 373호 기사-를 보면 '현상 자체를 보여주는 거라고' 하는데 대체 뭐가 현상이라는 건지 잘..
게다가 석원은 대식이 없으면 생존이 불확실한 정도의 약하고 의존적인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불편하고요. 그로 인해서 심지어 감독은 권력관계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상당히 불편합니다.
오히려 석원이 대식을 '이해'하기 전에 대식의 헌신에 대해서 지금까지 잘 해준 이유가 나랑 자고 싶어서였나고 비아냥거리는 대목이 어쩌면 호모 포비아들을 굉장히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살짝 많이 불쾌할 뻔 했습니다.



다음 영화적인 면에서..

대사가 좀 위화감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일주의 캐릭터 설정이 과장되어 있으면서도 너무 전형적이고, 일주뿐 아니라 다른 많은 인물들이 대개 다 전형적이죠. 전형적이더라도 영화가 전형적으로 흐를 필요까지 있었나 싶죠. '반지의 제왕'도 아닌데요. 감독은 일주가 대식을 못 가지니까 석원을 빼앗는다는 설정이 참신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인데 그 역시 사실 식상한 패턴이지 않나요. 이건 뭐 저만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그리고 대식의 아이는 왜 등장한 건지, 영화적인 장치로 뭘 말하고 싶어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지금 번뜩 생각난 건데 대식의 과거를 드러내서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고 떠나야 했던 어떤 개인적인 아픔, 또는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고뇌를 드러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신파조였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이런 건 신파조가 될 수밖에 없나요? 그건 아직 제가 본 영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는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로드무비니까 '길'에 대한 것. 길이 정말 주구장창 나오는데 그렇게 인위적인 샷으로 길을 보여줘야 했는지 살짝.. 뭐 이건 취향의 문제니까요. 김인식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고..



총평은-
이건 동성애자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들이 보실 때 오해의 소지가 많고, 결론이 위험하게 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어떠한 문제의식도 잘 느낄 수 없었고 그저 씁쓸한 뒷맛입니다. '우리는 사실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안일한 슬로건을 걸고 싶었던 거라면 정말 위험한 게 아닌가 하고 걱정도 해봅니다.

다만, 한국에서 게이섹스 장면이 영화의 딱 처음부터 나온다거나 하는 시도 자체는 그 용기로써 칭찬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high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