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님의 덧글에 답을 달다가 문득 언젠가는 써야지 했던 것이 기억났다.
설연님 고맙습니다. :)
내 안에서는 팬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좀 꺼리게 되는 기준이 하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똑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나 혼자 고민하는 부분.
그 사람의 팬이냐, 아니면 그 사람의 커리어의 팬이냐 하는 것.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나는 확실히 '나는 팬'이라고 말하지만 후자의 경우 그저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카테고리도 있다. 그 사람의 퍼스낼러티까지 포용하지는 않더라도 굉장히 예뻐해줄 수 있는 정도의 호감을 가진 대상들. 이 세 번째 카테고리는 첫 번째에 더 가깝다.
팬픽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팬심 없이 팬픽 쓰는 것이 가능하냐-의 질문에는 나는 가능하다고 대답할 테니까.
예를 들어볼까..
ex 1. 오노 사토시 (첫 번째 경우)
나는 이 사람의 팬이다.
내가 생각하는 팬은 퍼스낼러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사람 커리어의 향상을 기뻐한다. 이 사람에게 한 인간으로서 매력을 느낀다. 이 사람의 행동들에 굉장히 자극과 감동을 받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각자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좋은 일에 함께 기뻐하고 싶고, 슬픈 일에는 함께 슬퍼하고 싶다.
ex 2. 브리트니 스피어스 (첫 번째 경우)
나는 브릿의 열렬한 팬이다.
브릿이 결혼을 하든 말든, 이혼임박이라는 루머가 돌든 말든, 살이 찌든 말든, 아기를 낳고 나서 다시 담배를 피든, 나는 브릿을 사랑한다. 언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좋아할 수 있다. 범죄자가 되더라도 차마 끝까지 미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도 지극히 동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날이 그루브한 음악을 들려주는 브릿을 어떻게 안 사랑할 수가 있을까. 브릿의 음악적 성장-가창력 성장은 사실 잘 모르겠다-을 지켜보는 흐뭇함도 좋다.
ex 3. 젝스키스 (첫 번째 경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제는 '빨리 군대나 가라'고 해버리는 사람들이지만 항상 이 사람들의 인생에 있어 순간순간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내가 더없이 힘들었을 때 나의 기쁨이었고, 나의 친구가 되주던 사람들이다. 어쩌면 똑같이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었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이 사람들이 참 귀하다. 이 사람들이 가수 시절 노래를 잘 하든 못 하든 사실 별 상관이 없었다. 왜냐면 노래는 둘째 치고 나는 이 '사람'들이 좋았던 거다.
ex 4. 플라이투더스카이 (두 번째 경우)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인간으로서의 플라이투더스카이 두 사람을 좋아하고 있지는 않다. 처음 이 두 사람에게 끌린 것도 우연히 노래를 듣게 되어서였고, 팬픽을 쓰게 된 것은 이 두 사람의 함께인 모습이 예뻐서와 쓰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확실히 나는 이 사람들의 노래를 기다리는 팬이다. 커리어의 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팬들이 '환희팅! 브랸팅!' 이런 말씀하실 때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ex 5. 코다 쿠미 (두 번째 경우)
이 사람의 뮤직비디오를 매주 기다린다. 목소리와 춤을-노래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지만-좋아한다. 대놓고 들이대는 그 자신만만한 섹시함과 시원시원한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관심은 그다지 생기지 않는다.
ex 6. 장진 감독 (두 번째 경우)
장진 감독의 영화는 진짜 좋아한다. 근데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영화는 참 내 취향이신데, 사람은 별로 취향이 아니시다.(笑)
ex 7. 우리 교수님 (두 번째 경우)
교수님이 좋다. 정말 박식하시고 강의 한 번 쌈박하시다. 내가 교수가 된다면 교수님 같은 교수가 되고 싶다. 굉장히 존경한다. 근데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ex 8. 주민규 (세 번째 경우)
인간적인 궁금증은 별로 안 생기는데 탐구욕은 불타오르게 하는 사람. 모습이나 행동이 매력으로 똘똘 뭉친 사람. 어쩜 인간이 이렇게 건드리고 싶은지, 귀여운 짓을 하는지 진짜 궁금하다. 데려다 놓고 키우고 싶을 지경.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커리어 향상이 상당히 기대되고 흐뭇하다는 점.
ex 9. 조인성 (세 번재 경우)
귀엽다. 이미지가 좋다. 키 크고 잘 생겼다. 스타일도 좋다. 연기도 마음에 든다. 점점 연기를 잘 하게 되어서 흐뭇하다. 다음 번 작품이 기대된다.
ex 10. 이완 맥그리거 (세 번째 경우)
데려다 놓고 관찰하고 싶다. 뭘 먹으면 그렇게 노래도 잘 하고 연기도 잘 할 수 있는지.
이 미묘한 차이.
나만 고민하는겨. 나만 고민하는겨.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팬이든 아니든 신랄할 땐 신랄하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 대상에게만 관대한 건 그 사람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될 거다.
그런 정도의 애정을 가진 대상들에게나 앞의 세 카테고리에 해당된다.
사실-_-나는 아니다 싶은 대상에게는 지독히도 철저히 무관심한 성질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