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주 가던 어떤 팬사이트가-어디까지나 내 관점에서-위기에 빠진 듯 보인다.
어떤 사이트는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을-물론 주인장이 몇 번 이사를 다니긴 했지만-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이어가고 있는 반면 그 사이트는 내가 처음 알았을 때부터 썰렁한 듯, 움직이는 듯, 열광적인 듯, 소극적인 듯, 나를 포함해서 굉장한 숫자의 유령들이 득시글한 사이트였다.
처음에는 주인장과 손님들이 서로 굉장히 상냥한 말투로 대화도 하고 분위기 좋았었다.
그 주인장의 글도 재밌었고 한 동안 굉장히 떠들썩한 곳이었다.
그 동네가 삐걱거리겠다고 예측하게 된 최초의 사건은 일견 별것 아닌 것이었다.
주인장이 올린 어떤 글에 수정해야 할 사항이 있길래 나는 잘난 척 하기 싫어서 익명으로 지극히 공손하고 상냥하게 글을 올렸었다. 사실 그 내용이 지극히 하찮은 것이었거니와, 내 딴에는 꽤 공익적인 목적으로 쓴 글이었다.
그 다음날인가에 다시 그 곳을 찾았을 때 나는 무언가 이건 아니다 싶었던 일을 보았다. 내 글이 필요 이상이었다는 이유로 예쁘게 삭제 당했던 것이다. 약간 어이가 없고 기분이 썩 상쾌하지 않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했었다. (웃겼던 것은 그 다음날 다른 사람이 내가 올린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을 또 올렸다는 것이다.)
하여튼 난 그 사건 이후 그 사이트 주인장에 대해 적잖이 실망했고 주인장의 태도라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그 팬 사이트의 손님이 학생층이 많은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장은 시험기간 이후 쉽게 글이 잘 안 올라오거나 게시판이 썰렁하거나 한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투정 내지는 짜증 비슷한 소리를 자꾸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런 태도에는 좀 심하게 말해서 '초딩이냐-_-'의 반응까지 보였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자신과 같은 정도의 기대치를 적용하는 건 솔직히 좀 유아적인 발상 아닌가.
주인장들 모두가 덮어놓고 친절상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가식일 수도 있고 그렇기만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일단 나부터도 그렇지만 주인장도 사람인데 성격따라 좀 까칠할 수도 있는 거다. 지적당하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광고글이거나 헤어진 옛 애인이 신상 공개하고 난동 부리는 것만 아니면 글을 삭제하는 것은 내 나름의 기준으로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 같다. 차라리 글을 쓸 권한을 주지 않는 쪽이 낫다.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라는 곳에서 글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남의 글을 내가 권한이 있다고 해서 그냥 지우는 것은 글을 못 쓰게 하는 것보다 훨씬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행위라고 본다.
그냥 다 덮고 얼굴도 안 보이는데 시종일관 상냥한 게 좋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간편할 것이다. 하지만 할 말 다 하고 오히려 굉장히 까칠한 사람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곤 한다. 상냥한 쪽이 솔직할 수도 있는 것이고 까칠한 쪽도 지나치게 무례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나은 걸까. 그런 바보 같은 저울질을 해보게 된다.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하여튼 까칠하고 뭐고 간에 남의 글 함부로 삭제하면 못 쓴다는 것이다.(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