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내가 쓰는 글

 | 잡담
2005. 9. 15. 07:18


[2005-09-15 07:18 수정]




매우 좋아하는 작가인 이우혁 씨가 자신을 칭할 때는 결코 '작가'라고 칭하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은 그저 '글쓴이'라고..

그리고 나도 스스로 자주 말했다.
'내가 쓰는 건 팬픽이 아니라 팬픽과 비슷한 팬픽나부랭이야. 다른 작가들이 쓰는 건 팬픽인데 내 건 아니야.'

스스로 내 글은 여러 모로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럼 내가 쓰는 글은 무얼까.
팬픽의 종류이긴 하다, 비록 질은 낮지만..

얼마 전에야 안 사실인데..
렛츠비 게시판에도 썼지만 옥스포드 영영 사전에 'fanfic'이라는 낱말이 추가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옥스포드 사전은 아니었지만..



Fanfic(-tion)

Fiction written by fans as an extension of an admired work or series of works, especially a televisionshow, often posted on the Internet or published in fanzines.
(인기영화나 시리즈물, 특히 텔레비전쇼의 연장선상의 이야기로 팬들에 의해 쓰인 소설로 자주 인터넷에 게시되거나, 또는 팬잡지로 출판된다. - 해석에는 오류가 있을 가능성 높음.)


HOUGHTON MIFFLIN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 Fourth Edition



출처 - http://www.yahoo.com/




논문도 찾아봤다.
대중소설에 관한 것..
대중소설 이전의 통속소설담론에 대한 것..


예술에 대한 것.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여러 답들..







늘 내 글은..
내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읽으면서 지루한 글이 아니어야 하고 그냥 다 읽고 나면 '아, 잘 읽었다.'싶은 글이 좋다.
그런 글이 좋다.
물론 문학성 있게 쓸 수도 없을 뿐더러..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그런 심오한 글은 더욱 쓸 수 없으니까..


나날이 심란해지는 블로그 검색어에 충격에 충격을 거듭해서 받다가 대체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사랑얘기를 쓴다. 섹스 장면이 나오지만 줄거리에서 전혀 동떨어진 단순한 장면은 없다. 사랑하지 않은 상태의 관계라고 해도 줄거리상 하등의 이유가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아예 본래 의도 자체가 코미디라든지이고.

사실 상관 없는 거였다.
누구나 오는 블로그였고 그걸 바랐으니까..





읽는 입장에서는 여러 번 읽고 곱씹고 곱씹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고 더 가슴 저미는 그런 글이 좋지만 그런 글을 쓸 능력도 없을 뿐더러 어설프게 그렇게 써놓고 감상을 강요할 수도 없는 법이니까..




오늘 '月暈'을 쓰면서 무로마치 말기의 혼인예식에 입는 시로무쿠白無垢의 쇼를 떠올리면서, 짙은 자색의 히타타레直垂를 입고 새하얀 센스를 든 사토시를 상상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 글이 어떻든 그건 벌써 내 의도와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했다.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웠고 알고 있다.

예술은 진眞, 선善, 미美를 지녔다고 했다.
내 글은 그런 거창한 것들을 품지는 못한다.
내 글의 한계를 알고 있다.
난 그냥 예쁜 사람들의 사랑얘기를 쓴다.
서로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사랑얘기.
흔해빠졌으면서도 그만큼 신기하고 아름다운 그런 사랑얘기.
통속소설이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했던가.
상식적이고 식상하면 어떤가.
그러면서도 모두들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데.



다음 편을 올리지는 않으면서 잡생각만 많다.
스스로 팬질하면서는 복잡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글을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글은 내 생각의 분신이니까.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니까 복잡해지는 것이다.
남의 자식 일은 쉽게 쉽게 말해도 자기 자식 일에는 명료한 상황에도 고민을 거듭하는 어머니와도 같은..
쉽지 않다.
무서운 일이다.
여러 사람들 앞에 내어 놓는 것은.


혼자 쓰고 즐기면 되잖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런지도..(笑)



덧) 다음편 쓰고 있습니다. 바빠진 관계로 생각을 충분히 할 여유도 없네요. 글도 잘 못 쓰는 주제에.(笑) 그래도 쓰고 있습니다. 특히 '月暈'는 너무 오래되어버렸죠..(먼 산) 곧 들고 돌아옵니다. '만화가..'도 쓰고 있어요. 재미도 없는 글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네가 읽을 리 없으니까 여기다 쓸게.
고맙다, 있어줘서.
안 그런 척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인 것 알고 있어요, 센세.
내가 너무 너무 귀찮게 하는데도 있어줘서 고마워, 정말.
Posted by highenough